《순수의 시대》를 공들여 읽었다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2017)
《순수의 시대》를 공들여 읽었다.
‘워튼’의 글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비평한 그의 친구이자 스승을 만나서 어느 곳에서 그런 평을 받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 나는 ‘워튼만큼 문장을 다듬는데 많은 공을 들이면서 정제된 우아함을 선보인 작가도 흔치 않다’고 말한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2017) 저자 ‘윌리엄 케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순수의 시대》(2008) 만만치 않은 책 두께에 한숨부터 나왔지만 기우였다.
1870년 뉴욕 아카데미오브뮤직에 대한 묘사부터 화려한 관객으로 들어 찬 박스석의 구석, 프리마돈나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꽃잎이 다 뜯긴 데이지를 입술에 대는 모습까지 활자는 책장을 떠나 내 마음에 안착하는 느낌이었다. 주인공 ‘뉴랜드 아처’와 ‘메이 웰랜드’ 그리고 ‘엘렌 올란스카’가 모두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워튼’은 이들의 미래를 단숨에 알려주는 친절한 작가였다.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debbie-905/223094348941
‘친절해서 단순하다’라고 평가받을 이유는 없다.
책의 앞쪽에 등장하는 ‘줄리어스 보퍼트’ 부인의 연례 무도회장과 마지막 쪽에 등장하는 ‘엘렌 올란스카’를 보내기 위한 만찬장의 섬세한 묘사 또한 ‘워튼’이 만든 책 속의 오페라 무대였다. 그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잘 짜인 대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활자에 소리와 색깔과 감정까지 담아내는 작가의 천재성에 나는 감탄을 멈출 수가 없다.
이 책에서 작가는 ‘워튼’의 압축적 기술에 대해 언급한다.
‘잠시 그는 대형 란다우 마차 안의 어둠 속에서 갸름한 눈과 빛나는 눈을 어렴풋이 보았다. 그녀는 떠나버렸다.’〈이디스 워튼처럼 써라〉125p
많은 단어를 선택하는 대신 ‘떠나버렸다’에 집중하여 독자의 안타까움 마저 삼키게 하는 절제의 미학.
《순수의 시대》는 ‘뉴랜드 아처’가 명문가에 발목 잡혀 원하는 사랑을 가슴에 꾹꾹 묻고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결말 에도 작가는 남자로서 불행한 인생을 또 한 번 선택하게 한다. 죽은 ‘메이 웰랜드’의 자리를 ‘엘렌 올란스카’에게 넘기지 않고 ‘뉴랜드 아처’가 호텔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작가의 의도는 ‘순수일까 사디즘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고전의 특징적 결말 방식인지 나는 이 장면에서 똑 같이 호텔로 돌아가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헨리’를 본다. 또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고 말하는 ‘비비안 리’의 모습도 찾는다. 명작이 주는 감동은 어쩌면 '비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오래 머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