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베르테르'여
가을로 떠나는 책 읽기
처음 고전소설을 집어든 때는 중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우연하게 손에 쥔 펄벅의《대지》가 내가 읽은 첫 고전이었다. 도서관 구석에서 찾아낸 책은 오래된 책 냄새와 함께 누렇게 바래진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식자로 인쇄된 듯 보이는 그 책이 왜 내 맘에 끌렸는지 잘 모르지만, 낡은 책에 손을 댄 그때부터 나의 책 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손에 잡은 책은 끝을 보아야 잠들 수 있던 시절. 불 끄고 자라는 아버지 호령에 플래시 불빛 비춰가며 이불속에서 읽던 책이 왜 그렇게 좋았던지….
지금은 남이 됐지만 내 삶이 가장 반짝였던 순간에 그 사람을 만난 것도 책 때문이었다. 약속 시간에 좀 이르게 도착해서 읽던 책을 마저 보다가 시간이 사십 분이나 지나는지도 모르고 앉아 있었던 그날. 《장길산》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렇게 오랜 기다림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운명 같은 그 만남을 하지 않았을 텐데.
자식 낳고 삶에 찌들어 가면서도 책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으려 애썼던 시간들. 무엇하나 풍족지 않은 현실이지만 도서관만큼은 우리를 풍요롭게 했다. 간식 싸들고 소풍처럼 아이들 손잡고 다녔던 도서관에서는 항상 행복했다.
구석에 푹 퍼져 앉아서 각기 책에 몰두하고 있다가 문득
' 아이는? '
' 엄마는? '
하는 눈빛이 마주치면 안도하며 말없이 미소 짓고 다시 책 속에 얼굴을 묻는. 서로를 닮아가는 아이들과의 기분 좋은 한 때가 항상 우리를 위로했다.
나의 책장에는 여행을 위해 준비한 책들이 여럿 눈에 띈다.
‘ 서귀포 올레에 주저앉아 윤동주의 별을 헨다’
‘ 독도를 만나러 가는 길에 데미안을 동행하다’
' 인천공항 서점에서 빨간 머리 앤을 사다’
' 오사카 호텔 루프 탑에서 민들레 영토를 읽다'
' 영국 가는 하늘에서 삼국지를 다시 보다'
' 세느강변에서 에밀과 이야기하다'
표지를 넘기면 안쪽에 남겨진 메모한 줄이 여행의 추억으로 남겨져있다.
여행과 책. 그냥 책과 여행은 어쩐지 같이 다녀야 할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책, 커피, 음악, 여행, 친구, 기다림 … 여기에 어울리는 나.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연 초에 《대지》를 다시 찾아 읽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구석구석 인상 깊었던 장면에서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고전 소설들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막상 책을 손에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5070 독서 동아리를 만들어 두 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을 한지 이 년이 되어간다.
나의 즐거움이고 감사한 일이다. 열정 넘치는 회원들과의 만남, 토론을 위해 준비하는 이 주간의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그동안 서머셋 모옴, 셰익스피어와 헤르만 헤세, 헤밍웨이, 괴테, 톨스토이, 사마천 그리고 많은 한국 작가들의 오래전 책을 읽었다.
회원 모두가 ‘언젠가 한 번쯤은 읽었던 책들인데도 다시 읽는 시간들이 설레고 새로운 느낌이 든다’고 한다. 오래 전과 지금은 생각과 경험이 달라져서 인지 예전에 느낌과 지금의 감동이 서로 차이 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 그 말을 믿는다.'
어린 자식들 끼고 살면서 불안했을 때 그들에게 다가올 수 있는 갖가지 위기를 예견해 준《수레바퀴 아래서》는 나의 육아 지침서가 됐었다. 어렸고 힘들었고 무능했던 내가 아이들의 호수와 숲이 되어 줄 수 있는 지혜를 헤세는 백 년 전에 소설에 적어 두었다. 어느 때에 내게 그런 가르침을 주었는지 그때를 알 수 없지만 오랜 독서 습관을 통해 나도 모르게 습득된 것이라고 믿는다. 내 아이들 역시 손에 쥔 놀이 감이 책이었기에 바르게 자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사람은 곁에 누구를 두고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늙어가도 책 읽는 친구들을 가까이 두고 영혼을 채워갈 수 있음이 고맙다.
가을은 책 읽기에 참 좋다.
오랜만에 인터넷 주문 말고 서점으로 가을 소풍을 떠나야겠다. 내 젊은 베르테르 같은 친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