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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Nov 03. 2023

가장 젊은 나의 가을아

가을에 미안해서 아직 시월이던 날 가을빛 속을 걸었다.   

  

집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서 더듬더듬 낯선 길을 갔다. 

쳐들어 온 이방인에 풀꽃들이 주는 눈총. 

눈웃음 인사하며 한발 다가서니 원래 친절한 양 풀꽃도 따라 웃었다. 

'왜 이제 왔냐고' 나의 게으름을 꾸짖어도 '이제라도 와주니 다행이다' 위로로 들려왔다.     

 

가을에 노랑이 많은지 알지 못했다. 

향 짙은 노란 산국화, 가을 물든 은행잎, 달맞이꽃 이름 모르는 풀꽃들의 향연에 불쑥 들어와도 어색하지 않은, 가을은 노랑의 축제였다. 

바로 곁에 펼쳐진 잔치마당을 보지 못한 나는 ‘어디를 헤매고 있었나’ 질문한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버린 날들. 

바쁘다는 한마디 변명으로 모두 용서받을 수 없는 이 가을에 뻘쭘하게 서있다.  

   

은퇴하고 맞는 가을은 색다른 느낌이다.      

인생의 계절이 내 앞에 아직 노랑으로 펼쳐진 것을 보며 가벼운 흥분을 느낀다. 

곧 다가올 갈무리와  겨울의 서리도 이미 알고 있으니 심하게 놀라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난여름의 푸름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기에 욕심 내지 말자고 토닥토닥 나를 달래고 있다.  

   

다행이다 오늘 가장 젊은 나의 가을을 만나서.      

손가락 걸며 또 게으르지 말라고 엄포 놓는 풀꽃의 귀여운 눈총에 빙그레 웃는다. 

시월은 갔어도 나의 가을은 아직 진행 중이다. 


조금 더 오래 머물자 나의 젊은 가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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