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바람 잘 날 없다

by rosa

바다놀이가 끝나고 허기를 때웠다. 먹는데 진심인 우리, 영어로 메뉴를 고르는 일에 어지간히 적응 됐다. 일본에서 일하며 공부한다는 필리핀 알바생 A양의 서빙으로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만좌모를 산책했다. 이국적인 풍광 속에서 유치한 사진 찍기를 계속. 만 명이 앉아 쉴 수 있어서 만좌모란다. 제주 일출봉을 카피해 놓은 듯 커다란 코끼리 바위가 바다에 긴 코를 담근 모습이 재미있다. 바다는 어디나 아름답다.

일몰을 보기 위해 우아한 부세나테라스 호텔 커피숍에 자리 잡았다. 근사한 커피를 마시며 수다삼매에 빠졌다. 우리가 함께하는 매시간에 사건사고가 가득했지만 맘 상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일몰은 우리를 하와이로 데려갔다. 그림엽서에 보던 노을이 붉게 펼쳐지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와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의 콜라보로 작품을 만들었다, 바다로 숨어드는 태양, 우리 젊은 날이 기분 좋게 내일로 바통을 넘기는 시간 또 다른 추억 한 페이지를 채웠다. 서쪽으로 펼쳐진 노해를 거닐며 십 년 후 다시 오자는 약속을 영상에 담았다. “사랑해 친구야.”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나 싶었다.

그럴 리가 없다. 평화로운 하루를 마무리하며 운전에 긴장이 풀렸는지 역주행을 하는 H 때문에 마주 오던 운전자가 기겁하며 피했다. 긴장을 놓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 진리다. 그래도 소리내어 웃는 우리가 제정신인지.


미리 봐둔 식당으로 예약 없이 차를 몰았다. 컴컴한 내부. 점심 무렵에 영업 중임을 확인했는데 저녁 장사를 접은 이유는 무얼까. 게시해 놓은 쪽지를 발견한 M이 번역 어플 이용해 알아보려고 휴대폰을 찾았다.

로밍이 안 될 때부터 무용지물이던 그녀 휴대폰이 마침내 자취를 감추었다. 국내에서 잃어도 불편한 것이 휴대전화인데 외국여행 중 사라지니 긴급한 상황이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분명 바다가 감춘 게 틀림없다. 이미 어둠이 깔린 바다로 차를 돌렸다. 모래를 털어내던 벤치가 유력한 장소였기에 플래시를 밝히고 헐레벌떡 단체 뜀박질로 뛰어갔다. 없다.

다섯 명이 몰려다니며 눈에 불을 켰다. 못 찾으면 어쩌나.


오늘 행운의 여신은 Y에게 몰빵한 날이 맞다. 그녀 황금 손으로 울고 있는 휴대전화를 찾아냈다. 아슬아슬 밀물에 잠기기 직전이었다. 환호하는 아줌마들. 비로소 마음을 쓸어내리는 M. 그렇게 오늘도 바람 잘 날 없는 하루를 지냈다.

하루를 정리하는 밤 시간. 이 글 쓰는 고요 중에 친구들은 잠에 빠졌다.

작가 친구를 위해 준비한 그녀들 시나리오일까 싶을 정도로 다사다난한 시간을 살고 있다. 아직 남은 이틀 동안 또 무슨 황당한 상황이 생길지 이제 흥미롭다. 그래도 다투지 않고 커다랗게 웃는 우리 내공 역시 장난 아닌 듯.

삼일 묵었던 숙소에서의 마지막 밤. 잊지 못할 우리 행복한 기억이 졸고 있다. 처음 끼워본 오리발 무게를 견디느라 고생한 허벅지가 소복이 부었다. 통증으로 어기적댄다. 우리 추억이 가득 밴 숙소와도 아침이면 안녕이다. 제발 내일은 무탈한 하루이길.



만좌모 Cape Manzamo지질공원


Onna, Onna-son, Kunigami-gun 904-0411 Okinawa Prefecture






일몰이 아름다운 부세나 테라스 호텔 커피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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