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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May 08. 2024

2018년 5월 8일,  타임슬립 하고 싶다


 

1.


2018년 5월 8일, 돌아갈 수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

'혹시나' 하는 어설픈 기대 따위 않는 나지만 딱 한 번 타임슬립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하루, 그날로 가고 싶다.


삶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위태하게 살았다. 그래서 그때가 마지막일지 전혀 몰랐다.

핑계다.

허덕이는 매일이 힘겨웠다. 이 길에 끝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조차 사치라서 아껴야 했다. 나는 퀵샌드에 살았었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할 수 있다면.





2.


2018년 2월 내 삶 모든 에너지를 갈아 넣었던 딸이 박사과정을 마치고도 석사로 졸업했다. 수척해진 딸은 초라한 내 단칸방에 짐을 풀었다. 더 힘든 사람이 이란 것을 아니까 내 실망은 꺼낼 수 없었다.  습관처럼 멈추지 않는 노래는 초라한 엄마의 응원가였다.


봄이 오고 딸이 연구소에 자리를 얻었다. 비싼 송도로 이사하는 날. 대학원생 방보다 못한 고시텔에 아이를 두고 돌아오는 내내 울었다. 잘난 딸아이에 못난이 엄마. 우리 노력이 어느 날에야 빛을 발할지 알 수 없는 적막한 시간이었다.

고마운 한 달이 흐르고 어버이날. 딸이 보낸 카네이션 한 송이를 받았다.  동봉한 카드에 내년부터는 꽃바구니 보낼 테니 마지막 카네이션 한 송이를 기쁘게 받아달라는 아이. 건강한 진심이 고마웠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3.



늘 도움 주시는 친정부모님이 지척에 살고 있었다. 고명딸로 자랐는데 늙은 부모님께 아픈 손가락 돼서 딸은 언제나 죄송했다. 내년에는, 다음에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항상 공수표를 날리는 딸에게 매번 속아주는 부모님. 이름 붙은 날이니 모른 체할 수 없어, 꽃집 앞에 서성이다 엄마 좋아하는 참외 만 원어치 사서 두고 왔다.  내년에는 커다란 카네이션 바구니를 두 분께 드리며 행복한 미소를 보고 싶었다. 내년에는.


그해 유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다음이 올 거라는 나의 기대는 흉하게 무너졌다. 영정 앞에 오열하는 2박 3일 내내 국화대신 빨간 카네이션이 아련했다. 꽃 한 송이에 주저한 나의 빈손에는 되돌릴수 없는 후회만 들려있었다.


비겁하게, 지옥 같던 내 인생 사막은 거기서 끝났다. 한번 더 5월8일을 기대했던 딸 마음에 카네이션  대신 선인장만 가득자랐다.


다시 어버이날, 돌아갈 수 없는 나는 웃음 잃은 카네이션 한송이 창에 붙이며 오늘도 후회지옥을 서성인다.


그립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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