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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Jun 13. 2024

여우와 두루미와 복돌이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하고 접시에 수프를 담았다. 접시 위에 맛난 음식을 구경만  두루미가 열받아 다음날 여우를 불렀다. 호리병에 수프를 담고 혼자서 쪼르륵 먹으며 여우를 놀렸다.


정확하게 일주일 동안 평화로운 우리 집에 국지전이 발생했다.


복돌이 태어난지 세 달 가까울 무렵부터 젖병꼭지가 찌그러 붙어 먹다만 아이가 짜증 내는 일이 았다. 드디어 때가 됐구나 초보 할머니가 겁 없이 새 젖꼭지로 교환했다.


밥 먹기 전 유독 기분 좋은 복돌이. 그날도 날아갈듯한 표정으로 덥석 한입  물더니 큰 눈을 더 크게 지릅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우와앙'.

세상 슬픈 울음에 이제 눈물까지 더했다.


" 할머니 저한테 왜 이러시는데요? 우왕~~"

" 나 특별히 한 거 없는데 뭐가 불편한데  말로 하면 안 되겠니~~"


똑같은 브랜드 제품을 그저 한 단계 올려서 구입했을 뿐인데... 전에 먹던 소프트함과 다르다고 난리가 났다. 대체 어쩌라고.

갓난아기 고집을 꺾을 장사는 없다더니.  다행히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다른 브랜드 젖병 두 개 덕분에 버리지 않은 꼭지가 있어  급한 불은 껐다.


복돌이와 젖꼭지 간의 전쟁이 시작됐다. 주문한 꼭지마다 미세한 차이로 불합격. 아이가 그토록 섬세한 구강센스를 가졌는지 미처 몰랐던 게 죄일까? 복돌이의 젖꼭지 감별능력은 기네스북감이다.

전쟁은 종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두 개 젖병을 돌려 막기 소독하며 수유 전투를 치렀다.


혹시나 싶어 후기를 참조해 제3의 브랜드 젖병을 새로 구입했다. 다행히 아이 입에  진입까지는 성공. 그러나 이번에는 홀사이즈가 불만이었다. 아, 더 갈 곳이 없다. 나도 울고 싶다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구입한 젖꼭지, 기도하는 맘으로 조심스레 젖병을 물렸다.


빙그레 웃으며 젖꼭지를 물고 꼴깍 분유를 넘겼다.


만세! 드디어 종전이다.


이번 전투를 통해 얻은 교훈이 많다.

여우와 두루미와 복돌이의  밥그릇은 소중하다. 함부로 건들지 말자. 버리는 건 완전한 상황이 올 때까지 미루는 게 상책이다.


그나저나 저 많은 젖꼭지를 다 어쩐담? 채소마켓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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