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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Jun 20. 2024

백일(百日)

2024년 6월 15일 복돌이 태어난 지 백일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 그 고마운 날을 모두 함께 축하하는 조촐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이전에는 아기가 백일까지 무사히 자라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때문에 집안 어른들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자란 아기가 백일을 맞이한 것을 대견하게 여겼습니다. 백일을 맞는 아기는 세상살이를 위한 준비를 마친 것으로 간주하고 앞으로 아기가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상을 차리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백(百)이란 완전함을 뜻하는 숫자이며  ‘모든’, ‘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축복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옛날부터 아기를 위해서 백일상을 차리고 작은 잔치를 치르는데, 음식은 풍성하게 차리면서 잔치는 소박하게 치르는 것이 관례였답니다. 그래야만 귀신의 시샘을 받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전통적 백일상에는 흰밥, 미역국, 백설기, 수수 팥 경단, 송편을 올립니다. 그 가운데 떡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데 수수 팥 경단, 송편, 백설기 등이 있습니다.


백일상에서 수수 팥 경단은 액운을 면하게 한다는 뜻으로 떡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옛말에 따르면 사람은 어려서부터 덕을 쌓아야(積德)하는데, 적덕은 붉은 떡(赤餠, 적떡)이라는 말과 비슷하여 이 떡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곡식 중에 수수가 값이 싼 편이어서 자식에게 떡을 해주기 어려운 사람들이 수수팥경단을 만들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송편은 특히 오색 송편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오행(五行), 오덕(五德), 오미(五味)와 같은 관념으로 만물의 조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백설기는 정결, 신성함을 뜻하는데 백 명의 사람이 나누어 먹어야 아기의 명이 길어진다고 하는 얘기가 있어서 지금도 백일떡을 해서 서로 나누어 먹는답니다.



이처럼 백일상에 차리는 음식은 백일을 맞은 아기에게 질병이나 액 같은 부정한 것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염원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수수팥경단은 아이 백일뿐 아니라 돌부터 일곱 살이나 열 살이 될 때까지 생일마다 해주면 좋다고 합니다. 내 기억에 엄마는 우리가 열 살 될 때까지 수수 팥 경단을 만들어주며 우리 건강과 행운을 빌어주셨는데 엄마의 정성 덕분에 오늘 행복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백일잔치 이외에 다른 풍습으로 배냇머리 깎음 색동옷 입히기, 아명 짓기 등이 있습니다.

배냇머리 깎음은 아이의 배냇머리를 곱게 묶어서 깊이 간직하였다가 성년식 날 돌려주어 평생 간직하며 어버이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한답니다. 단순히 풍성한 머리숱을 위해서보다 훨씬 낭만적이고 교육적인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색동옷은 그동안 흰 옷만 입히다가 백일 날에 처음으로 색동옷을 입혀서 어른이 안아보게 했답니다. 색동이라는 의미가 여러 가지 천의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떡을 백 명에게 나누는 것과 맥락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떡을 얻어먹은 사람은 여유가 있으면 쌀, 실, 옷, 밥그릇, 수저, 포대기, 반지 등의 답례선물을 보내 명과 복을 축원했답니다. 이때 떡접시를 닦지 않고 보내야 아이에게 복이 간다고 믿었답니다. 복돌이도 많은 선물을 받아서 감사합니다. 특히 떡을 나누어 드렸던 식당 손님이 백일떡은 그냥 받는 것이 아니라며 만원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우리 풍습을 알고 예를 갖추는 것도 삶에 소소한 즐거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백일잔치 때 아기에게 애 이름[아명(兒名)]을 지어주기도 한답니다. 본 이름은 태어난 다음 출생신고 할 때 이미 지어 주었으나, 어른들이 아기를 직접 보시고 생김새나 맵시 또는 귀여운 뜻으로 아이 때만 부르도록 애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답니다. 대신 애 이름은 집안에서만 부른다고.

복돌이는 태명이지만 아명으로 계속 쓸 생각입니다. 물론 할머니 글 속에 제일 많이 쓰일듯합니다.


백일 사진을 찍어주는데, 남자 아기인 경우는 고추를 내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던 것을 제주도 풍습에서 찾았습니다. 우리 복돌이 누드샷을 기대하시는 분은 없을 테니 패스*^^*


참, 백일이 가지는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는데 그것은 아기가 태어 난지 백일이 지난날이 아이가 만들어 진날로부터 일 년이 되는 날이라 합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조상님들이 더 깊이 생각했나 봅니다.


백일잔치는 외가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전통이 있다고 해서 신경 써서 백일떡을 주문했는데 맛이 좋았지만 모양도 예뻐서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예전 생각대로 방앗간에서 떡 했으면 유행을 모르는 할미가 될뻔했는데 SNS가 살려주었습니다.


백일동안 복돌이가 건강하고 기쁘게 지낼 수 있도록 브런치 작가님도 많이 축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인생에 백날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주춧돌이 튼튼해야 건물이 오래 반듯한 것처럼 아이에 대한 엄마, 아빠, 할미의 자세를 생각하고 육아에 초심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체크해 보는 귀한 시간으로 삼는 것도 의미 있었습니다.


곧 백일 사진을 찍고 나면 드디어 배냇머리를 깎아주려 합니다. 성년이 될 때까지 보관하려고 나무상자도 주문했습니다.  내가 엄마였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초보 할머니를 정신없게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행복이고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이 행복이 지켜지도록 정성을 다하는 할머니가 되겠습니다.



복돌이는 모빌을 좋아한다.

복돌이는 이모님을 좋아한다.

복돌이는 그네를 좋아한다.

복돌이는 바운서를 좋아한다.

복돌이는 노랑꽃 젖병을 좋아한다.ㅎ

복돌이는 녹턴을 좋아한다.

복돌이는 섬집아기 자장가를 좋아한다.

복돌이는 칠판에 상어그림을 좋아한다.

복돌이는 그 모든 것 중에서 할머니를 제일 좋아한다.


참 아름다운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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