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돌이를 위한 태몽을, 그것도 ‘좋은’ 태몽을 꾸고 싶었다. 첫 손주를 위한 멋진 꿈.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예비 할머니에게 꿈은 뜻대로 오지 않았다. 무의식의 문 앞에서 오래 서성거려도 평범한 태몽 하나 건지기가 어려웠다. 영웅의 출현을 청한 것도 아니었다. 아이에게 어울릴 소박한 한 장면, 내일을 비추는 작은 빛이면 족했는데.
내 태몽은 복숭아였고, 딸의 태몽은 사과였다. 과일의 상징을 성별이나 결실로 읽어내는 보편적 습관처럼, 이번에도 그만한 평범함이면 좋겠다고 마음을 낮추고 잠들기 전 꿈의 시나리오를 그려 보기도 했다. 아들이라 하니 “용, 호랑이, 잉어, 금덩이….” 그러나 밤은 묵묵했고 새벽은 말이 없었다.
딸도 사정이 비슷했다. 통화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태몽 안부를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의 친구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유치원생쯤 된 남자아이가 다가와 “저는 복돌이인데요, 우리 엄마 어디 있어요?”라고 묻는 장면이었다. 길치인 딸은 “복돌이도 같은 과 아니냐”며 웃었다. 막달까지 우리의 유일한 태몽 기록은 그 한 줄짜리 대사였다.
출산을 코앞에 두고 딸도 꿈을 꾸었다. 시댁 식구들과 성당에서 아이를 찾는 장면. 그리고 마침내 출산 예정일 일주일 전, 내 꿈에도 복돌이가 나타났다. 내용은 흐릿했지만 아이와 대화를 나눈 느낌만은 생생했다. 우리는 세 꿈의 공통점을 추렸다. “아이가 말을 한다.” 결론: 말로 살아갈 아이가 태어나리라. 근거 빈약한 통계였지만, 우리는 불완전한 자료 위에 나름 견고한 가설을 세웠다.
복돌이가 태어나 50일까지는 매우 조용했다. 우리의 해석이 틀렸나 궁금하던 순간, 마치 방언 터지듯 옹알이가 시작되었다. 이전의 침묵을 한꺼번에 쏟아 내는 듯했다. 의미 없는 음절에 우리는 의미를 보탰고, 작은 소리에 문장을 붙였다. 딸과 둘이 까르르 웃던 날들은 작은 천국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의 소리는 힘을 얻었고, 귀가 따가울 만큼 하루가 떠들썩해졌다. 태몽의 예감이 현실로 번져 오자 우리의 기쁨도 더 요란해졌다.
꿈 하면 신사임당의 용 꿈이나 김유신 누이의 ‘오줌 꿈’이 유명하지만, 강사 김미경 님의 태몽 일화도 재미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넌 태몽이 좋아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며 어릴 때부터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 태몽은 ‘옥수수 수확’이었고, ‘백마를 이끄는 대장말’은 꿈이라도 근사하게 가지라며 **엄마 친구(국어 선생님)**가 각색해 들려준 이야기였다. 중요한 것은 팩트의 미세한 정확도가 아니라, 그 말이 아이에게 건넨 믿음의 힘이었다. 좋은 태몽의 본질은 내가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어떻게 들려주었는가에 있었다.
생각해 보면 태몽은 한 사람의 삶을 확정하는 예언서가 아니라, 함께 써 나갈 동화의 서문이다. 우리는 사실의 목록이 아니라 이야기를 편집하는 방식으로 재미를 만든다. 가족은 그 편집의 첫 공동저자다. 누군가의 밤에서 건진 작은 장면에 또 다른 이가 해석을 덧붙이고, 제삼의 이가 믿음을 보태면서, 한 아이의 정체성은 관계의 시간 속에서 천천히 형상화된다. 태몽은 그 과정의 첫 단어일 뿐, 마지막 문장은 매일의 정성스러운 돌봄이 완성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좋은 태몽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아이의 소리를 들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꿈의 상징은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진다. 그러나 “네가 태어난 다음 날부터 매일 밤, 너의 내일을 생각하며 잠드는 우리의 마음”은 희미해지지 않는다. 꿈은 한 번 오고 가지만, 해석과 관계는 반복으로 단단해진다. 태몽이 운명의 예고편이라면, 돌봄은 그 예고편을 본편으로 편집하는 일이다.
가끔 상상한다. 태몽 공모전이 열린다면 어떨까. 각자의 밤에 분주했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꿈을 서로의 언어로 다듬어 주는 자리. “당신의 태몽, 참 좋습니다.” “이 장면을 이렇게 읽어 보면 어때요?” 생각만으로도 즐거움이 번진다.
언젠가 복돌이가 묻겠지. “할머니, 제 태몽은 뭐였어요?” 그때 나는 정직하게 대답할 것이다. “할미가 밤마다 꿈을 샀단다. 복숭아, 사과, 길 잃은 아이의 길잡이, 성당의 종소리, 그리고 ‘엄마 어디 있어요?’ 하고 묻던 네 목소리까지. 그런데 가장 좋은 꿈은 따로 있었어. 네가 태어난 뒤 매일 밤 우리 마음에 다시 쓰인 꿈. 그 꿈이 네 태몽이야.”
오늘도 꿈을 산다. 사실은 축복을 청한다.
복돌이의 내일에 붙일, 작은 빛 한 조각을.
꿈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