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식은 오랜 것 같은데 외양도 소리도 쌩쌩한 녀석이 드디어 나에게 왔다. 행복한 마음은 타임머신을 타고 오래전 여름으로 날아간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 그때만 해도 피아노는 부자의 상징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피아노는 언감생심. 드라마에서도 부잣집 공주님의 상징처럼 그려졌던 때가 있었다. 비교적 일찍 철이 든 나는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어도 느낌으로 알았다. 그래서 조르지 않았다.
입 밖으로 내본 적 없는 피아노. 그러나 내 속에는 여전히 만질 수 없는 만지고 싶은 피아노가 있었다. 음악실에서 교회에서 친구집에서. 피아노가 보이면 아무도 모르게 하얀 건반을 매만지며 내 그리움을 전했다.
알부자집(계란 도매상을 하던) 딸내미가 절친이었다. 그녀 방에 반짝이는 피아노는 항상 나를 유혹했다. 친절한 그녀가 악보를 보이며 건반 위치를 알려줬다. 생각보다 쉬웠다. 그렇게 생각했다 겁 없이.
그렇게 나는 '엘리제를 위하여' 악보를 건반 위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중학교 이학년 때였다.
고1 음악실기 시험은 아무 곡이나 아무 악기나 할 수 있는 것을 연주하면 A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피아노를 선택한 거의 대부분 학생들이 엘리제를 위하여를 선택했다. 두 마디가 넘어가지 않는 연주로 A를 받았다. 마침내 내 차례. 피아노 건반에 양손을 얹었다.
'미#레미#레미시레도'
" 잠깐, 너 아프니?"
냉랭한 남자의 목소리에 열일곱 소녀는 화들짝 부끄러운 손을 접었다. 뜨거운 여름날보다 더 붉어진 뺨. 소녀가 얼음장 같은 두 손으로 감쌌다. 흉내만 내는 것과 피아노를 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소녀는 꾹꾹 마음속에 부끄러운 소망을 심었다. '언제가 됐든 반드시 피아노를 배우고 말겠다.'
삶에 지쳐갈수록 소녀 마음에는 그날이 낙인처럼 선명해졌다. 그러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삶 속에서 어린 날 소망을 잃게 될까 두려웠다.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은 늘어가는 주름만큼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