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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1:1 데이트

막둥이랑 자발적인 데이트

by 효돌이작까야

이날은 막둥이 어린이집에서 가족 운동회를 하는 날이다.

작년에는 참여했지만 올해는 참여하기 어려워서 불가피하게 결석을 결정했다.


운동회 후 어린이 집에 가서 보육을 할 수 있으면 세 시간 정도 할애 하겠지만, 보육이 불가하다고 하니

세 시간을 들여왔다 갔다 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아이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래서 과감하게 포기했다. 오전에 스마트 스토어 주문이 들어오는지 확인한 후 일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날은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고,

아이와 시간을 온전하게 보낼 수 있게 되어서 버스를 타고 조금 멀리에 있는 키즈카페에 갔다.


웬걸, 키즈카페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랑 나 둘만 있었다. 전세내고 그 넓은 공간을 둘만 사용했다.

시설도 깨끗하고, 쾌적했다. 너무나 감사했다.

막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큰 아이랑 둘만 다니는 경우가 잦았는데 막둥이랑은 처음이다.

그러다 보니 막둥이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경험할 기회도 이번에 처음이 되는 거다.


막둥이도 버스를 참 좋아한다.

내릴 때 누르는 버튼을 보고 “엄마 이건 뭐야?, 엄마 빨간 불은 왜 들어온 거야?, 엄마 이건 누가 누른 거야?,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쉴 새 없이 질문 폭탄을 던진다. 귀엽고 피곤하다.


집에서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녀석이 밖에 나오니까 우주 쫄보가 된다.

큰 소리가 나는 것도 무섭고, 작은 충격에도 흠칫 놀라며 두려워한다.

이 녀석도 오감이 발달되어 있는 녀석이구나.

상대의 감정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였구나.


41개월 만에 아이아 단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찬찬히 들여다보니 재밌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애잔한 마음이 든다.

녀석, 얼마나 엄마랑 함께하고 싶었을까.

점심은 뭐 먹고 싶어?라고 물으니 “김밥”이라고 이야기한다.

김밥집에 가서 식사를 한 후, 앞에 이케아에 들러 필요했던 것들을 구매했다.

낮잠 시간이 돼서 그런지, 말도 점점 느려지고, 행동도 쳐진다.

안아달라, 다리 아프다 요구사항들이 늘어난다.

아마 큰 아이와 함께 있었다면 막내가 요청하는 것들을… 다 들어주지 못했을 거다.

“걸어, 다리 아파도 걸어야 해.” 하면서 대문자 T 같은 대답만 했겠지만,

“졸리지? 엄마한테 안겨, 지금은 잠들기 힘들 텐데, 잠깐 안겨서 쉬어” 하면서

이 날 하루만큼은 세상 너그러운 엄마 코스프레를 해본다.


집에 갈 때에도 얼마나 피곤한지 그 좋아하는 버스 말고, 택시를 타자고 한다.

한 정거장을 남겨두고 눈이 감겨오는 아기를 보고 있자니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백팩을 메고, 앞으로는 아가를 안고 한참을 걸었다가 허리와 어깨, 손목이 한계가 왔다며 소리를 꽥 꽥 질러대서

조금만 걷자고 하니 “응! 나 걸을 수 있어, 엄마. 안아줘서 고마워” 라며 이야기하고는 집에 도착해서 깊은 잠을 잔다.


뭐야, 뭔데.

41개월한테 설레는 나 뭔데.

참나, 진짜. 아 평소에 좀 이렇게 멋있어보지? 아들?

말짓만 하고, 맨날 형아 말 안 들어서 혼쭐만 나더니 오늘은 엄마의 수고도 알아주고

엉아가 따로 없네 정말.

감동의 도가니탕이 끓어가는 중에 큰 아이의 귀가 시간이 되었고,

이 도가니탕은 금세 식었다. 식는 데는 오분도 걸리지 않았다. 일상으로의 복귀다.


다음날 어린이집에 등원하는데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선생님! 어제 엄마랑 키즈카페에 갔어요. 엄마랑 같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라고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같다. 아이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낸 일.


이 한 번을 시작으로 다음을 만들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다음은 어디냐!

무려 KTX를 타고 평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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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