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월 아가= 루똥이
엄마들의 눈물버튼 첫째 아이.
왠지 모르게 첫째 아이에겐 미안함이 장착되어 있다.
분에 넘치게 해 주는데도 말이다.
이번 방학엔 큰 마음을 먹고 돌봄 교실에 보내지 않고 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이기도 하고,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랑 둘이 있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8개월부터 기관에 보내진 우리 루똥이.
육아동지들과 모이면 “루똥이 왔어요?”하고 물을 정도로 얌전했던 아이였음에도
육아라는 책임감이 버거워 어찌할 줄 몰라하던 어미를 만나 일찌감치 기관엘 다니게 되었다.
18개월.
아가도 어찌할지 몰라서 물통에 애착을 두고 하루 종일 그 물통을 들고 다니던 사진이 기억난다.
그때는 엄마로서 사는 것보다 나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일을 구해 사회생활을 하며 만족감에 취해 살고 있었다.
그러다 둘째를 임신하고, 셋째를 임신하고, 눌러앉게 되면서 마음의 병을 얻었고,
우리 루똥이는 시야 밖으로 나버렸다.
지극히 자기밖에 모르는 어미를 만난 탓에 루똥이는 82개월을 외롭게 지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작년 여름, 올 것이 왔다.
총명하고 밝던 아이는 점점 초점이 흐릿해지고, 표정도 없어졌었다..
선생님과 상담에서는 “엉망진창”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위클래스 상담에선 전체적으로 주눅 들어있고,
집이 편안하지 않으며 자신은 동생 하고만 소통하고 있고 (당시 동생은 두 돌도 안된 아가)
부모와의 유대관계가 온전치 않은 상태라고 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우울증 완치 판정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는데
내 마음이 이랬어서 아이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 싶었다.
모든 것이 다 나의 탓인 것만 같았다.
‘18개월에 아이를 맡겨놓고 내 만족에 취해 산 결과가 이거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말..’
자신에게 했던 말들이다...
아이의 상태를 듣고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생각을 해야하는데
케어가 힘들겠구나만 계산하고 있는걸 보면서
이렇게까지 최악인 엄마였나? 싶어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모성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인가.. 싶었던...
이때는 억지로 아이와 붙어있었다. 처방이었어서.
아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엄마와 함께 있고만 싶다 했다.
그렇게 뒤늦은 밀착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던거다..
이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우리 사이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스킨십이었다.
하교하는 풍경을 보면 아이들이 뛰어오며 엄마들에게 안겼다.
우리는? 왔어? 응. 가자. 응.
지금은? 저 멀리서 해맑게 웃으며 뛰어온다. 그리고는 푹 안긴다.
마음의 거리가 좁아지니까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횟수가 잦아졌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쁨을 느껴가는 요즘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밀착육아를 하는 요즘.
개인의 시간이 무지하게 중요한 나지만 언제 이런 시간을 갖겠나 싶어서
100개월짜리 아가랑 어디를 갈지 찾아보는 행복을 매일 누리고 있다.
여길갈까? 여길 좋아할까?
함께 가서 도슨트 들을까?
추운데.. 이번 주는 패스? 그래, 패스!
엄마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즐거워해주는 루똥이라…
엄마라면 껌뻑 죽는 존재와 함께하는 엄마라…
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10대에 진입했으니 곧 사춘기가 찾아올 텐데, 비뚤게 나가기 전에 우리끼리 추억을 잔뜩 만들어 나야지.
그래야 비뚤게 나갔더라도 다시 돌아올 거니까.
그 바람 하나로 카카오톡 예약하기 버튼을 누르며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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