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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임줌마 Apr 26. 2024

나는 알고 있다! 그 수박의 가격을

우리 집은 2살 터울의 딸 둘이 있는 평범한 집이지만 먹성은 평범하지 않다.

마트에서 수박 한 통을 거침없이 들고 집으로 온다. 초파리 꼬이는 게 싫은 난 오자마자 수박을 깍둑썰기해서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는다. 이틀 가나? 가끔 생각한다.. 이 정도면 초파리 올 시간이 없겠는데 난 왜 힘들게 깍둑 썰어서 정성스레 통에 담아둘까?... 아직도 미스터리다. 

그런 수박을 보고 있으니 큰아이 갖고 입덧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시간 : 때는 바야흐로 13년 전!

장소 : 우리 집(나는 지금 입덧 중~)




우리 친정엄마랑 나는 외모, 성격 어느 하나 닮은 곳이 없다. 딱~ 하나 입덧을 닮아버렸다...

나는 그날도 여전히 입덧 중이었다.. 너무 괴롭다..

세상에 밥이 꼴 보기 싫다. 말도 안 된다. 난 간식으로 김치볶음밥을 먹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내가..

TV 소리도, 취사 소리도, 전화벨 소리도 너무 힘들다.

매일 옆으로 누워 수건을 얼굴옆에 대고 침도 흘리고 눈물도 흘린다.. 세상 처량하다.

그날도 남편은 지방 출장 중이라 내 옆에 없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덧을 하는 친한 언니와 통화를 하며 서로 울다 웃다 하는 게 내 낙이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린다.. 쎄~ 하다. 맞다 어머니다!


"어 먹고 싶은 거 얘기해 봐"

(어머니는 다짜고짜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괜찮아요 어머니 먹고 싶은 게 없어요"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할거 아니니"

"아.. 감사해요 그런데 먹을 수 없을 거 같아요"

"속이 느글거리니까 개운하게 수박 먹으면 되겠다"

(늘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항상 왜 물어보실까..)

"아니에요 어머... 니.. 뚜뚜뚜...."

(통화 왜? 어? 뭐? 어?..)

통화 방식이 거의 이런 식이다.


주민센터를 갈 일이 있어서 간신히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여니 수박 한 통이 떡하니 놓여있다.


어머니는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아신다. 집 번호키를 달자마자 비번을 물어보셨다.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서로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데 그때는 소름 끼치게 싫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며느리처럼 똑 부러지게 싫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난 순순히 비밀번호를 말씀드렸다.


수박이 아주 크다! 집엔 신랑도 출장 가서 없고 아이도 태어나기 전이고

저 큰 수박을 어쩌란 말이냐... 그런데 더 큰 게 붙어있다! 놓여있는 수박 정 가운데

가. 격. 표  ₩27,900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금액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난다.

수박을 바라보며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수박을 저렇게 크고 비싼걸.. 저 혼자 다 못 먹어요 반 나눠먹어요"

"우린 그렇게 비싼 거 먹어본 적이 없어"


먹으라는 건가 먹지 말라는 건가..

난 알고 있다! 그 가격표는 나에게 꼭! 보여주시려는 의도였던 것을

왜~ 먹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도 굳이 굳이 사다 주시면서 마음불편하게 

이거 비싼 거야라는 표식을 꼭 하셔야 하는지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이들이 수박을 끝까지 안 먹고 핑크색 부분만 먹고 버리면 

난 군대 조교로 변신한다.

"다시 들어! 더 먹는다 실시!!"


평소 어머니는 시장에서 세일하는 수박을 한걸음에 달려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구입을 하셨을 거다. 수박은 늘 그렇게 구입하시던 어머니는 처음으로 최상급 수박을 사셨겠지..

오로지 입덧하는 며느리를 위해서..

속을 뒤집는 어법으로 수많은 오해를 사시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깊었음을 알고 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호박과 상추 이야기도 있어요~ 궁금한가요?~^^

(여기까지 할게요~ 다시 떠올리니 속이 뒤집어질 거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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