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마라톤대회에서 배운 것들
2025년 4월, 올해 상반기의 10K 첫 대회를 나갔다. 작년 11월 JTBC 10K를 뛰고 나서 품어온 소망은 ‘2025년에는 하프 마라톤을 뛰어보겠다’였다. 그런 바람과는 무색하게 겨울 내내 로드러닝을 거의 안 했기에 25년 상반기에는 10K 기록이라도 좀 더 당겨보자는 생각으로 첫 대회를 신청했다. 그게 4월 13일에 열렸던 YMCA 마라톤이었다.
YMCA 10K 대회는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출발해 청와대 앞을 지나 경복궁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남대문, 을지로입구, 청계천을 지나 보신각에서 끝나는 코스이다. 고도 차이가 크지 않고 평이한 코스구성, 심지어 자동차 도로를 통제하고 치러지는 대회이다. 그래서 이 대회는 불만의 소리가 들끓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러너들이 본인의 공인기록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참가하는 대회이기도 하다. 나 또한 과체중 뱁새다리의 몸으로 1시간을 가까스로 끊은 기록이 있으니 이번 대회에는 단 2, 3분이라도 기록을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일정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멘털관리를 엉망으로 했다는 점이었다. 해 봤으니 또 할 수 있을 거라는 대책 없는 자신감. 그것이 이번 시즌에 임하는 내 계획의 알파요 오메가였다는 점이다. 현실은, 식욕을 단도리하지 못해 살이 쪘고 페이스가 떨어졌다.
대회날이 다가오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가지 말까 백만 번 고민했다. 급기야 대회 전날에 갑작스러운 꽃샘추위와 설상가상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이건 대회를 안 나가도 된다는 계시가 아닐까 하는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대회 당일 새벽에도 침대에 누워 30분은 고민했다. 돌풍 예보가 내린 이 날씨에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대회 접수비를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고 나서야, 몸을 들어 올릴 엄두가 나기 시작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지난번이랑 비슷한 기록으로 들어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묵직한 불편감을 밀어내며 광화문 이순신상 앞 광장에 도착했다. 돌이켜보건대, ‘쫄 릴 것도 없고 긴장할 것도 없고 일단 뛰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그 마음은 담대함이 아니라 자만함에 가까웠던 듯하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며 비소를 온몸에 코트처럼 두른 중고신입의 마음 같달까.
일기예보대로 날씨는 추웠고, 돌풍도 엄청났다. 그러나 그것보다 큰 문제는 악천후로도 가려지지 않는 내 피지컬의 비루함이었다. 몸무게 3킬로가 찌니 숨이 안 쉬어졌다. 이가 아릴 정도로 단 음식을 들이 부운 뒤 당수치 오르는 것 마냥 심박이 올라갔다. 심장이 대장간 장인의 망치질처럼 텅텅텅 뛰었다. 몸무게 3킬로 차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2리터들이 생수병을 1.5개 더 들고 달리는 격이다. 팔이 떨어지든, 허리가 아프든, 무릎이 아프든, 힘이 더 들긴 할 테다. 경복궁을 도는 첫 2.5킬로 동안 이미 체력이 뚝 떨어졌다. 주변 경관도 눈에 안 들어왔다. 남대문을 향해 달리면서 숨도 안 터져서 중간에 세 번쯤 걸었다. 어떻게 작년에는 10킬로를 내리뛰었을까 하는 생각, 아직도 5킬로도 안 왔는데 언제까지 뛰어야 하나 하는 생각만 하느라 넓은 도로 위에서 남산타워를 측면으로 가까이 볼 수 있는 구간도 놓쳤다.
스스로를 담금질하지는 못할지언정 왜 이런 고생을 돈까지 주고 사서 했던가 하는 생각에 다다라서야 결승선이 보였다. 기록은 1시간 2분이 좀 안 되는 기록. 작년 기록보다 2분이 늦어졌다. 기록이 늦어진 것보다, 몸이 너무나 힘들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했던 믿었던 내게 환멸을 느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나는 모자란데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걸까. 쫌쫌따리로 즐겁게 뛰겠다고는 했지만 실력은 1도 없으면서 ‘쿨하고 섹시하고 펀하게’ 모토로 모르쇠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어릴 때부터 웬만한 것들은 중간은 가는 편이었다. 공부도 악기도 언어도 조금만 하면 중간은 했으니 모든 게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마흔 넘어 달리는 취미는 그렇질 않다. 달리기는 마치 파도와 겨루는 모래 쌓기 같아서, 멈추는 순간 내 능력은 파도에 휩쓸려 수포로 돌아간다. 다시 복구하는 데는 또 이전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추가로 들어간다. 자전거 타는 법이나 수영하는 법과 다르게 몸 어딘가에서 슬쩍 꺼내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재능이 없는 취미반 아마추어에게 러닝이란 ‘겸손한 성실함’이 없으면 지속하기 힘든 취미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다. 하프 마라톤을 뛰고 싶으면 하프를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겠다고. 말만 취미가 러닝이라 말하지 말고, 주먹구구식으로 며칠에 한 번씩 몰아 뛸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훈련을 해야겠다고. 우선 러닝 인플루언서들의 유튜브를 돌려보면서 훈련 계획을 세워보았다. 일주일에 며칠, 얼마의 페이스로 몇 킬로씩 달려야 하는지 적어두었다.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더 체계적으로 달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러닝클래스도 좋고, 그룹런 세션에 참여하는 것도 좋겠다. 혼자 뛰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스포츠브랜드의 무료 러닝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찾아보았다. 마침 나이키에서 러닝 세션을 신청할 수 있어서 3주간 주말마다 참여할 수 있게 신청했다. 첫 번째 주에는 하필 테마가 업힐 훈련이었는데, 남산북부순환로를 따라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업힐과 다운힐의 압박에 나는 장렬히… 퍼져서 낙오했다. 한 가지 기쁜 점은, 그렇게 하드트레이닝을 하면서 한 고개 넘어선 건지 그다음 날 평지러닝이 훨씬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극뽀옥해나가는 건가 보다. 겸손한 성실함을 매번 붙들고 25년 상반기,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