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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Sep 04. 2021

도시 속의 오아시스, 와카치나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31

숲을 꿈꾸는 바닷가 모래언덕


와카치나는 리마에서 비교적 가까운 휴양지이다. 나는 내 버킷 리스트의 하나인 나스카 라인을 보러 가기 전에 이곳에서 한 이틀 쉬기 위해 들렸다. 리마에서 와카치나까지 가는 버스는 없고 버스 종점은 와카치나라는 오아시스가 붙어 있는 이카라는 도시다. 이카까지 가는 네 시간 내내 오른쪽으로 태평양을 끼고 달렸다. 그러나 바다는 바닷가의 모래언덕으로 인해 자주 보이지는 않았다. 버스의 오른쪽은 황량한 사막이다. 작은 도시와 마을들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데 사막의 황량함으로 인해 이곳이 바닷가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바다는 어쩌다 한 번씩 얼굴을 내밀고 했는데 나는 바다보다도 모래 언덕에 심긴 작은 나무 묘목들에 더 관심이 갔다. 풀 한 포기 없는 바닷가 모래 언덕과 마을 주변의 평지에는 조금씩 땅을 나누어 작은 묘목을 심었다. 앞으로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할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이 모래언덕이 숲으로 변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 데나 눈을 돌려도 푸른 산을 볼 수 있는 우리는 풀한 포기 없는 모래밭의 모습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즐기고 있으나 모래밭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모래밭은 평생 악전고투를 해야 하는 험한 자연에 다름 아닐 것이다.

국도변의 모래밭의 작은 묘목들. 이들이 언제 클까 싶지만 멀리 보이는 제법 자란 묘목들을 보면 숲은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듯하다. 모래 둔덕 너머에 태평양이 있다.


오래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 모노 카운티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레드락 암각화 유적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암각화가 아니라 모래밭에 심어 놓은 키 작은 관목의 묘목이었다. 묘목들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조그만 철망으로 씌워져 있었는데 이런 사막에 풀 한 포기라도 소중하게 심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나를 감동시켰던 것이다. 그와 같은 마음들이 여기 페루 바닷가를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다만 이곳에서 만나는 마음들에서는 생존을 위한 안간힘 같은 것이 보였다.


도시 속의 오아시스


이카 터미널에서 택시로 15분 거리의 와카치나 오아시스는 이카시의 일부이다. 오아시스에 도착하면 사방이 모래산이라 집도 절도 없는 사막 한 복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오아시스를 둘러싼 모래 산 위로 올라서면 버스에서 내린 이카시가 한눈에 펼쳐진다.  


해 진 뒤의 오아시스 풍경. 멀리 오아시스와 연결된 이카시의 불빛이 보인다.

오아시스는 중국 둔황의 위에야췐(月牙泉)과 비슷한 규모였다. 위에야췐은 숙박시설이나 위락시설은 없고 역사유적으로 보존이 잘 된 지역으로 나름 역사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문화적 풍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와카치나에 역사나 문화의 향기를 맡을 수는 없고 위에야췐 같은 역사 유적은 없지만 아름다운 전설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본래 작은 웅덩이였는데 예쁜 공주가 이 웅덩이에서 목욕을 즐겼다. 이곳의 물과 진흙이 건강에 좋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공주가 목욕을 하려고 이곳에 와서 옷을 벗었는데 가지고 있던 거울을 보니 어떤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공주는 놀라 옷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채 도망가고 말았다. 그 후 남겨놓은 거울은 호수가 되었고 공주가 도망가면서 풀밭에 끌려가던 망토의 주름이 모래 언덕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공주는 지금도 이 호수에서 인어처럼 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전설마저 없었다면 아름다운 오아시스는 그저 무색무취하고 흔한 휴양지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호수는 이 지역의 공주가 가지고 있던 거울이 변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며 공주는 지금도 호수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도 오아시스 물 가에서 모래언덕을 올려다보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모래톱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햇볕에 빛나고 있었다. 모래 능선이 하늘과 만나는 날카로운 선 위에 젊은이들이 샌드보드를 들고 정상으로 오르는 모습이 환상적이라 할 만큼 아름다웠다.


어두운 구름이 덮인 하늘 아래 저녁 햇살에 빛나는 모래 언덕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고요한 한 낮 오아시스를 즐기다 


호수 주변에는 이름 모를 꽃들과 키 큰 코코넛 나무들의 숲이 조성되어 뒤의 희게 빛나는 모래언덕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물 위에는 놀랍게도 안동의 반변천에서 흔히 보던 쇠물닭들이 새빨간 이마를 자랑하듯 내밀고 떠다니고 있었다.


안동에서 거의 지구 반대편에 해당되는 이 페루 남쪽의 사막에서 쇠물닭을 만나다니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졌다. 또 낙동강변에서 흔하게 보던 자귀나무와 같은 생김새의 나무가 있었는데 자귀나무와 달리 큼직한 붉은 꽃이 달려 있었다.


오아시스의 쇠물닭과 붉은 꽃


한낮의 오아시스는 너무나 조용했다. 사막을 이리저리 휘젓는 사막 전용 관광용 차량인 버기카의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코코넛 트리나 키 작은 관목들 그리고 물 가에 빽빽하게 자란 갈대숲 사이로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날아다니고 새끼들은 데리고 자맥질을 즐기는 오리들의 물장구 소리가 이곳에 생명이 있음을 알려줄 정도였다.


호숫가를 천천히 걷다 보면 이런 호수의 고요를 즐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이 여기저기 섞여 있었다. 오아시스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렇게 한낮의 평온함 속에서 유지되다가 다시 저녁이 되면 버기카들도 돌아오고 사람들도 호숫가로 쏟아져 나왔다.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는 소리들로 오아시스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모래 언덕으로 둘러싸인 오아시스는 화가들의 최상급 그림 소재일 듯하다.


와카치나 오아시스는 도시에 붙어 있는 휴양지이자 관광객들의 즐거운 놀이터였다. 사막에는 모래 언덕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버기카들이 여기저기 굉음을 울리며 달리고 있었다.  사막은 이제 우리가 상상하던 그 사막이 아니다. 젊은 청춘의 환호성과 버기카의 시끄러운 소리들이 그들이 일으키는 모래 먼지에 뒤섞여 여기저기서 날아다닌다.


도시를 뚫고 올라온 모래산


해질 무렵 올라간 모래 언덕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경관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이 그려내는 황금빛 곡선들의 풍경이고 또 하나는 모래를 뒤집어쓴 황량한 도시의 풍경이다.

 

줄지어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버기카들, 그리고 모래언덕을 종횡무진 달리는 차량.


처음 모래언덕을 올랐을 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도시 풍경을 눈앞에 마주한 감정은 실망스러움과 착잡함이 뒤섞인 것이었다.  서서히 해가 기울면서 도시는 점차 회색으로 변해갔다. 사실 햇볕이 있을 때라고 그리 생기 있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도시의 한 복판에는 가파른 경사의 모래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 산봉은 마치 도시 한 복판을 뚫고 솟아 오른 듯 크고 작은 건물들 사이에서 도시의 주인처럼 보였다. 도시는 그 모래 산봉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도시의 남쪽 자락이 내가 서 있는 사막의 언덕 쪽으로 기어올라 조금씩 사막의 안쪽으로 먹어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몸집을 불려 가며 주변의 모래밭으로 퍼져나가는 연체 동물 같았다.


이카 시내의 한 복판에 솟아 있는 모래산


모래 위에 지는 해


도시의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면 이곳은 가도 가도 끝없는 모래사막이다. 그렇지만 실제는 도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곳이어서 사막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또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이기도 하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듯 버기카를 즐기고 해 질 녘 모래언덕 뒤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감상할 수도 있고 오아시스 호수에서 보트 위에서 하늘을 볼 수도 있는 그런 곳이다.


넓은 모래 웅덩이 위에서 외줄 타기를 즐기는 청년 하나가 줄 위를 걸어간다.
이렇게 모래 산 위에 앉아 있으면 인적 없는 사막 한 복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정말 인적 없는 사막에서 자동차 매연도 없고 인공적인 불빛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싶은 여행자에게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서쪽 모래 둔덕 너머로 해가 기울어 가는데 멀리 모래밭이 푹 꺼진 곳에서는 외줄 타기를 즐기는 젊은이가 아직도 줄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보니 이 사막 속의 메마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내 눈에는 마치 외줄 타기를 하는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비포장 도로 위에 먼지를 날리며 퇴근하는 차량들도 보이고 그리고 붉은 해가 모래밭 뒤로 몸을 감춘다. 사막 한가운데의 도시와 또 오아시스와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에 어둠이 내려오고 있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붉게 물들면 집으로 돌아오는 차량들이 일으키는 흙먼지도 붉게 물든다.
하루의 고단함을 이끌고 서쪽 모래밭 뒤로 붉은 해가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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