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길동무, 물새와 산새 17
2013년 8월 말에 퇴직을 했으니 벌써 9년이 지나갔다. 그해 초겨울 무렵부터 낙동강변을 걸어서 시내로 새로운 출근을 시작했다. 걸어 다니니 동네 골목길에 무슨 가게가 있는지도 새롭게 알게 되고 강변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걷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출근하는 나의 손에는 늘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철새들이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된 어느 날 내 눈에 특별한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그 새는 강물을 헤엄치다가 용상동과 법흥동을 잇는 낙천보 인도교 아래의 돌 하나를 골라 올라서서 날개를 털었다. 그리고 녀석은 바로 내 카메라 속에 잡혔다. 아침 햇빛에 빛나는 갈색 털이 머리 뒤로 뻗쳐서 마치 투구를 쓴 것처럼 보였다. 커다란 눈망울이 투명하게 빛났고 붉은색 부리 끝은 살짝 아래로 굽어 매의 부리처럼 날카롭게 보였다.
갈색 머리 밑으로 흰색 깃털이 목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다가 흰색은 밝은 황갈색으로 바뀌었다. 새의 등을 덮은 깃털 색은 흔히 보는 청둥오리 비슷한 느낌을 주었는데 전체적인 인상은 오리 종류라기보다는 맹금류에서 보는 날카로움이 돋보였다.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비오리 암컷이란 것을 며칠 후에야 알게 되었다. 검색에 시간이 걸린 것은 조류 사진은 늘 수컷이 그 새의 대표적인 사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비오리의 수컷은 머리는 짙은 파란색인데 너무 짙어 때로는 검게 보이기도 하고 또 빛의 방향에 따라서는 초록으로 보이기도 한다.
암컷의 머리 뒤쪽 깃털이 말의 갈기털이 날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비해 수컷의 머리 깃털은 대체로 머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그래서 수컷의 머리를 보면 언제나 포마드 머릿기름 바른 반듯한 신사의 차림새가 떠오른다. 수컷의 몸체는 등의 검은색 깃털을 제외하면 희고 밝게 빛난다. 몸길이 65센티미터 내외의 비오리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 하얀색의 긴 보트가 떠 있는 것 같다.
비오리를 알게 된 후 겨울철 낙동강 복판에 떠 있는 새들의 많은 수가 비오리인 것은 더 나중에야 알았다. 이들은 물속의 작은 고기들을 잡아먹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고기를 잡기 위해 물속에 들어가면 한 참씩 나오지 않는다. 주로 풀뿌리 같은 것을 뜯기 위해 얕은 물에서 머리를 거꾸로 하는 청둥오리들을 보다가 물고기를 물고 나오는 비오리를 보면 매우 특별하게 보이기도 한다.
올해도 비오리는 어김없이 찾아와 오늘같이 추운 날에도 떼로 모여 강물을 튀기며 물장구를 친다. 오늘 아침 출근할 때도 비오리들과 반갑게 아침 인사를 주고받았다.
* 이 글은 경북기록문화연구원이 발행하는 기록창고 17호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