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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도 Oct 29. 2022

3개월 vs 3년

육아에도 직장생활과 같은 주기가 있다. 

흔히들 직장 생활은 3년 주기로 위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입사 후 아무것도 모르던 얼래 벌래 시절에서 일이 조금씩 손에 익고 제법 할만하다 싶어지는 시기가 3년쯤 걸리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눈이 조금씩 다른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일이 조금 지겨워서일 수도 있고 일에 짬밥이 생기니 여유로움에 주변을 한번 환기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에 회사에 들어가서 갖는 결심 중 하나가 '최소 3년은 버티자'이다. 입사한 지 몇 개월 만에 이직에 대한 뽐뿌가 오더라도 3년을 목표로 굳세게 버티는 것이다. 아무리 회사가 거지 같아도 1년은 너무 끈기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2년도 너무 어중되니 최소 3년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다 좀 더 할만하다 싶으면 여행 한번 다녀온 뒤에 계속 다니고, 안 되겠으면 긴 여행을 빌미로 그만두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씩 주위를 환기하고 나면 또 새로운 힘이 생기고는 했었다. 인간에게 쉼과 휴식은 정말로 중요한 것 중 하나라는 걸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한때는 그런 시간을 도태로 여기기도 했었다. 모두들 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멈춰있다 뒤로 밀릴 것 같은 조바심 때문이었다. 


그때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해줬었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가고 있는 거야"


친구의 무심한 말 한마디는 나를 깊이 안심시켰다. 조금은 불안하고 엉성한 상태로 머물러 있어도 괜찮다는 안도감. 나는 그 뒤부터 공백의 시기를 좀 더 유연하게 지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주기는 직장생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육아에도 주기가 있었다. 그것도 계속 파도가 들이치듯 잔잔바리로 계속해서 밀려왔다. 결코 같은 파도나 주기는 없었다. 엄마의 인생은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좀 익숙해질 만하면 더 빠른 속도로 자라는 아이 덕분에 늘 새로운 국면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출산 후 첫 3개월은 잠과의 사투였다. 신생아의 위장은 어른의 1/15 크기로 조금씩 자주 먹는다. 내가 알던 신생아는 종일 잠만 자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잠 사이에 2~3시간 간격으로 계속 먹여야 했다. 아기는 움직임이 적어도 신진대사가 활발해 배고픔을 자주 느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만 부르면 잘 자는 것도 '애바애'였다. 


'애바애'는 엄마들의 전문용어로, 애 by 애라는 뜻이다. 애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집 첫째는 매우 드물게 초특급으로 순한 케이스였다. 통잠도 100일 이전부터 자기 시작했고 배가 고파도 보채는 일이 없었다. 먹여야 할 때가 돼서 먹이면 눕혀만 놔도 잘 자던 아이였다. 보통 12시간씩 꼭 통잠을 잤고, 낮잠도 오전 오후로 1~2시간씩 꼭꼭 챙겨 자고는 했었다. 자다 깨도 우는 법 없이 혼자 뒹굴거리며 놀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배시시 웃어주던 아기였다. 


하지만 둘째는 완전히 달랐다. 첫째가 순하면 둘째가 절대 순할리 없다는 친구들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완벽히 들어맞았다. 


둘째는 절대 그냥 누워 자는 법이 없었다. 잠이 들 때까지 안아 흔들어야 했는데 한두 시간씩 흔들어 재끼다 겨우 잠들어 눕힐라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눈을 떴다. 


어떤 때는 이불채로 안고 흔든 적도 있었다. 내려놓으며 빼는 손길에 잠이 깨버리니 이불까지 아예 들어 안고 잠들 때까지 흔드는 것이다. 그럼 4~5kg 되는 아기 무게에 겨울철 이불 무게까지 하면.... 팔과 등이 남아나지 않았다. 매일 온몸이 멍석말이당한 것처럼 쑤시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둘째 백일 무렵까지 2~3시간씩 쪽잠을 자는 생활이 계속됐다.  


먹는 것도 잘 먹지 않았고, 겨우 먹여놓아도 주룩주룩 토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렇게 심플하게 텍스트로 쓰니 '애가 먹고 토를 했구나'로 느껴질 수 있겠다. 실제로 그 과정은 어떻냐 하면. 


1. 첫째를 보는 와중에 분유를 타서 소파에 앉는다.

2. 둘째를 안아 들고 분유를 먹이면 첫째가 다리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3. 돌이 좀 지났을 무렵의 첫째는 분유통을 본인이 잡고 싶어 하거나, 엄마한테 안기고 싶어 징징거린다.

4. 겨우 둘째 분유를 먹이고 세워 안아 등을 두드려 트림을 시킨다.

5. 그 와중에도 첫째는 꾸준히 엄마한테 안기거나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6. 트림을 시키고 둘째를 자리에 눕힌 뒤 젖병을 씻으러 간다. 

7. 왈칵 거리는 소리가 나 뒤돌아보면 누워서 분유를 뿜고 있는 둘째를 볼 수 있다.

8. 자신을 봐주지 않는 엄마한테 화가 난 첫째가 본격적으로 한쪽 다리를 붙들고 늘어진다.

9. 자석처럼 내 몸 한 군데에 첫째를 붙이고 둘째의 옷을 벗겨 씻기고 다시 옷을 입힌다. (물론, 젖은 베개와 이불 교체도 포함이다) 

10. 아이를 눕히고 뒷정리를 좀 할라치면, 먹은 것을 다 게워낸 둘째는 또 배가 고파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11. 다시 숫자 1로 돌아가 같은 것을 반복한다.

(*위 사이사이마다 큰 일을 보고 엉덩이를 씻기는 일은 일로 치지도 않았다는 것을 참고해주기 바란다.) 


대략 하루가 이런 식의 패턴으로 흘러갔다. 백일 무렵이 지나면 아이는 조금씩 잠자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럼 또 그것만으로도 한결 수월하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이는 내 적응 속도보다 빠르게 자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엄마도 슬슬 쪽잠살이에 적응이 될 무렵이면, 아이도 시야가 선명해지고 다리에 힘이 붙는다. 모빌 등으로 눈앞에 시선 끌어줄 것을 놔줘야 하고, 뒤집기를 시작하면 종일 용쓰는 아이를 상시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누워만 있다 뒤집기에 성공한 것 까지는 너무 기특한데, 다시 뒤집는 법을 몰라 칭얼거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이제 기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인즉슨 아이의 활동 반경을 살펴 위험한 요소들을 치워놔야 한다는 것.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어 화장실에 갈 때도 문을 열어놓고 내 시야 안에 둬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다음으로 걸음마라도 할라치면 또 그것대로 대 환장 잔치의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간다. 




다만, 육아와 직장생활의 주기에 차이점이 있다면. 직장생활 3년 차에는 그만두거나 멀리 훌쩍 떠날 수 있었지만 육아는 그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친정엄마나 남편 찬스로 홀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길어야 하루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다. 산을 하나 넘으면 강이나 언덕이 나와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산을 하나 넘으면 또 산일까? 그렇다고 별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넘어야지 어떻하겠는가. 내 앞에는 끝내야 하는 일이 있고, 키워내야 하는 아이가 있는것을. 영원한 것은 없다. 내 앞에 놓여진 일들을 해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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