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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생활 Jul 12. 2020

/글/ 곰팡이


곰팡이와 악연이 시작된 것 은 내가 그와의 연애를 시작했을 때 부터였다. 그는 깨끗하고 널찍한 집에 혼자 살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고 나서 그 깔끔했던 공간은 지저분하고 좁게 변해갔다. 우리가 더욱 사랑을 하면 할수록 집은 그만큼 더 엉망이 되는 느낌이었다.


곰팡이는 옷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빈티지 옷을 좋아했지만 빨래와 정리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기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옷들이 서로 엉겨 붙어 겹겹이 쌓여갔다. 옷장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송골송골한 물방울이 항상 고여 있었다. 그때 그것이 곰팡이의 시작임을 알아챘어야 했는데 살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23살 먹은 내가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심한 비염 환자라 냄새를 잘 맡지 못했을 뿐더러,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어서 종종 쓰레기 같은 옷 더미를 들고 집에 오는 나에게 뭐라고 하지도 못했다. 우리 둘은 곰팡이에게 최고의 커플이었다.


옷장은 어느샌가 쿰쿰한 냄새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내 옷과 그의 옷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 몸에까지 쿰쿰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우리는 몰랐다. 우리는 사랑할 줄밖에 몰랐으니까. 가끔 부모님 집에 가면 매번 나에게서 곰팡이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내 기분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나한테 냄새가 난다고 독설 할 수 있는 건 부모님 뿐이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에게 곰팡이 냄새가 났겠지만 나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사실 비 온 날의 지하도 냄새를 꽤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곰팡이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을 땐 그 널찍한 집에서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였다. 이삿짐을 싸다가 미술 역사 시간 때 프로젝트로 고전적 미술 재료인 에그 템프라 기법을 응용해 계란 흰자와 피그먼트를 섞어 그린 내 자화상을 비닐에 쌓아 옷장 구석에 처박아 놓은걸 발견했다. 그때 잘 그렸던 기억이 떠올라 기분 좋게 비닐을 벗겨 내었는데 내 얼굴에 그로테스크하게 곰팡이가 피어오른 것을 보았을때 정말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털이 곤두섰다. 갑자기 그동안은 회피하고 있었던 곰팡이 냄새가 내 코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너무 끔찍했던 나머지 유럽여행에서 모았던 빈티지 옷들과 아끼지만 자주 입지 않은 옷들을 모두 버렸다. 고등학생 때 사귀었던 남자 친구의 돌아가신 엄마가 주신 조그마한 서랍장 뒤에 듬성듬성 나 있는 곰팡이를 보고 왠지 모르게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는 곰팡이가 없었는데, 나와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것 같아 미안했다. 내 사랑이 곰팡이를 만든 것 같았다.


이사를 하고도 사실 3년 동안 쿰쿰한 냄새의 옷을 입고 다녔다. 나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았는데 부모님은 매번 뭐라고 하셨다. 옷을 대신 빨고 드라이를 해주셔도 없어지지 않는 냄새였다. 어느샌가 곰팡이 냄새는 나의 일부가 되었고, 내 인생 어디쯤 항상 숨어서 자리 잡고 있었다. 새로 이사한 곳에서 또 이사를 나갔을 때에도, 유독이 내가 쓰던 방 창문 쪽에만 곰팡이가 났었고 그의 옷장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도 나처럼 이제 곰팡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곰팡이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어쩌면 곰팡이의 영향을 받아 가끔 콜록거리고 알레르기에 고생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 이사 갔을 때 정말 조심했다. 곰팡이 냄새나는 옷을 다 없애고 햇빛에 말렸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곰팡이와 조금 멀어질 수 있었고 더 이상 나와 그에게서 쿰쿰한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곰팡이 때문에 속이 상한다. 곰팡이와 헤어진 줄 알았는데 최근 침대에 누울 때마다 이상하게 곰팡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참 웃긴 게 5년 넘게 쿰쿰한 냄새에 적응되었던 내가 일 년 동안 곰팡이 청정구역에 살았더니 기가 막히게 곰팡이 냄새를 알아채고 좋지 않은 냄새라고 느꼈다. 두통이 오기도 했었다. 사실 내가 너무 예민한 줄 알았다. 그에게 몇 번 이야기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최근 갑자기 비도 오고 그래서 무엇인가 축축한 느낌이 곰팡이 냄새일 거라고 스스로를 이해시켰다. 하지만 계속 풍겨오는 익숙한 냄새가 거슬려서 어느 날 벽에 붙은 침대를 슬쩍 빼내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와 붙어 있던 벽 밑쪽에 마치 나를 따라다니는 스토커처럼 곰팡이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너무 슬펐다. 서른이 되어서 아직도 곰팡이가 있는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밀려왔다. 내가 청소를 잘 안 해서 그런 걸까 하는 죄책감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건강과 청결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곰팡이의 존재에 굉장히 실패를 맛본 느낌이었다. 곰팡이는 사랑으로 시작되어, 내 일부로, 그리고 쉽게 떼어내지 못하는 혹처럼 나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평생 곰팡이와 이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악몽 같은 생각을 하며 곰팡이 스프레이를 뿌린 뒤 10분을 기다리고 닦아냈다. 페이퍼 타월에 아주아주 까맣게 묻어 나왔다. 그야말로 지독한 놈들이다. 나는 침대를 벽에서 모두 떨어뜨려놓고 다음날 아침 미친 듯 청소를 했다.


나는 곰팡이와 헤어지고 싶다. 곰팡이가 없는 나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그렇게 씁쓸한 청소를 마치고 이제는 정말 조심해야지 하는 순간 저 멀리 키우고 있던 화분 흙 위에 곰팡이가 곱게 핀 것을 목격했다. 멍청하게도 1년 동안 물을 주고 키웠는데 멀리서 보이는 하얀 뭉치들이 그저 돌인 줄 알았다. 화분 속의 곰팡이들이 마치 나를 조롱하는 느낌이었다. 무릎에 힘이 쫘악하고 빠져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아마 성공하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2016년에 쓴 글. 2019년 슬프게도 나의 인생에는 아직도 곰팡이가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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