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야 했던 계절들
열한 살의 가을, 기적이 되기까지
다섯 번째 이야기
엄마의 시간
- 버텨야 했던 계절들
그 가을을 건너기까지,
엄마에게도 긴 시간이 있었다.
.
스무 살.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나이였다.
하지만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내 안에 또 다른 심장이 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혼전임신이었다.
학구열이 불탔던 나와는 다르게
교육열이 하나도 없는 집안에서는
여자는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형편이 여유로웠음에도
대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날,
집에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그날 이후,
일하게 된 사무실에서
그저 부지런하고 성실해 보이던
그 모습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던 생명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좋았다.
그래서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내가 기대한 결혼생활과는 전혀 달랐다.
시댁에서 나를 반기지 않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며느리를 소중한 가족이 아닌,
일하러 들어온 사람처럼 여겼다.
갖은 시집살이로 나를 못살게 굴었다.
남편은 아빠로서의 준비는 전혀 안된
그저 철없는 어머니의 아들일 뿐이었다.
아기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주지 않을 만큼
육아에 무관심했다.
그래도 첫 아이라고
가끔 한번씩 등에 업어주고 안아주는 것.
그게 다였다.
그는 매일 저녁이면
습관처럼 술을 마셨고,
늘 술에 취해 잠들었다.
그럼에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출근하는 그 모습을 보며
그래도 가장으로서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 감사하자,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이가 돌이 지나서부터
한번씩 심하게 열경련을 일으켰다.
열경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그 순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가가
엄마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의식을 잃은 채,
새파래진 얼굴로 눈동자가 돌아가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때마다 내 심장은 주저앉았다.
남편은 늘 술에 취해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고,
새벽에 그런 아이를 업고 뛰는 일은
오로지 나 혼자의 몫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다.
.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한 계절, 한 계절이 지날 때마다
그 계절의 가장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났다.
아이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고,
나의 전부였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어쩌면 남편보다도
아이에게 더 의지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에게
같이 놀 수 있는 친구이자,
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남동생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둘째 아이의 모습은
내가 기대했던 아기의 모습이 아니었다.
선천성 심장질환.
그리고 다운증후군.
그럼에도 나는
모성애가 유독 강한 사람이었다.
내 아이니까,
키울 것이고
지켜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작은 몸으로 버텨내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아픔이었나보다.
생후 9개월,
아기의 심장이 멈췄다
.
1991년 1월.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눈보라가 치던 날,
나는 둘째 아이를 땅에 묻어야 했다.
그렇게 삼 년을 울었다.
코끝이 시린 겨울이 오면,
특히나 눈이 오는 날이면
아린 가슴을 쥐어짜며 숨죽여 울었다.
입술에 피가 나도록 깨물어가며
목놓아 울부짖지도 못한 채,
가슴으로 울어야 했다.
아직 세돌도 안된 아이에게
동생의 죽음을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망설여졌다.
고민 끝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름다운 천사들이 사는 하늘나라에
땅에서 사는 가장 착하고 예쁜 아기 천사들이
일꾼으로 필요하다고.
그래서 동생은
하늘나라로 갔다고.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눈부시게 빛나는 천국마을을
꾸미고 있다고.
.
지금,
내 전부인 이 아이만큼은
반드시 지켜내야 했다.
이 아이마저 잃으면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아이가 잠든 밤마다
눈물로 기도했다.
‘주님,
제발 이 아이만은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이 아이마저 데려가시면 저도 죽어요.’
그날 이후,
나는 시간을 세지 않았다.
밤인지,
아침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의 숨이
끊기지 않는 것.
그것만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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