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 잔처럼
열한 살의 가을, 기적이 되기까지
일곱 번째 이야기
기적이라는 말
– 크리스탈 잔처럼
나의 병명이 명확해진 후
만나게 된 담당교수님은 여자분이셨다.
여의사로서의 당당한 아우라가 느껴졌고,
‘따뜻한 카리스마’라는 말이
딱 이 분을 설명하는 표현 같았다.
한 명, 한 명
아픈 아이를 대하시는 그 눈빛에서
따뜻함과 진실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이 선생님께서
반드시 내 병을 고쳐주실거라 믿었다.
.
담당교수님은
‘기적’이라 말씀하셨다.
대단한 의료기술이 더해져서가 아니라
이 아이가 살고자 했던 강한 의지가
스스로를 살린 거라고.
기적을 만들어 낸 건
바로 그 것 이라고.
크리스탈잔보다 더 조심스럽고
더 귀하게 다뤄야한다고 하셨다.
그 말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엄마는 기적이라는 말을 들은 그 순간에도
크게 기뻐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기적’이라는 단어가
달아나지 않도록
간절히 붙잡고 있는 사람 같았다.
.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생활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차분히 설명해 주셨다.
조금이라도 숨이 가빠오거나,
몸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면
그 즉시
멈춰야 한다고.
그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하는 건
심장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다고.
또 혈전예방을 위해
아스피린 복용은
평생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시던 끝에,
조심스럽게
한 가지 말을 더 덧붙이셨다.
“나중에 임신과 출산은
조금 힘들 수도 있어요.”
임신을 하게 되면
몸 안의 혈액량이 늘어나고,
심장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피를
온몸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출산 과정에서는
그 부담이 더 커질 수 있고,
그때 심장이
버텨내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하지만 그 상황에서
그 말은
절망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그건 마치
우리가 욕심내서는 안 될
영역을 알려주는 말 같았다.
그저 삶을 더 이어갈 수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그렇게 가을이 갔다.
어느덧 나무들이
하나둘 옷을 벗어던지고,
코끝이 시리기 시작한 계절이 찾아왔다.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의 문턱에서
나는 병원을 나왔다.
긴 입원생활을 등에 지고,
통원치료라는 이름의
또 다른 시간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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