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봄

책이 지켜주던 시간

by 이랑

열한 살의 가을, 기적이 되기까지


여덟 번째 이야기

다시 시작된 봄
-책이 지켜주던 시간



퇴원하고 나서
그해 겨울 동안은
집에서 요양하며
통원 진료를 다녔다.

바로 학교에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면역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고,
병원에서도 휴식을 권고했다.

집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읽었다.
또 쓰고 싶은 글들을 써가며
공책을 채워나갔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피아노를 치기도 했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놀았다.
같이 소꿉놀이를 하고,
유치원 놀이를 하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가장 아픈 계절인 그 겨울을
우리는 두 번 더 보냈다.

또 그날처럼 흰 눈이 펑펑 내리고
눈보라가 치던 1월의 어느 날,
여동생이 태어났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엄마에게 계속 남아있던 슬픔과
아린 겨울의 기억들을
조금이라도 덮어주지는 않았을까.

.

부모님은 세차장을 운영하고 계셨다.
해가 질 무렵이면
나는 밥을 짓고
부모님을 기다렸다.

이 추운 날씨에
종일 밖에서 세차를 하신 부모님이
얼마나 춥고 허기지실까 싶어서.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갔다.
앙상하던 나무에 봉우리가 맺히고,
어느새 봄내음이 스며들었다.

잠들어 있던 생명들이 깨어나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봄이 오던 무렵
나는 다시 가방을 메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초등학교 5학년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 해 동안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맘껏 펼치며 보냈다.

담임선생님들은
내 보물 같은 재능을 알아봐 주셨고,
동극 무대에서는 주인공으로,
학예회에서는 사회를 맡길 만큼
기회를 열어주셨다.

또 학교 도서관 사서부로 활동했다.
수기로만 적어 내려가던 도서 대출 장부에
처음으로 바코드 시스템이 들어오던 시기였다.

책의 이름을 하나씩 입력하고,
바코드를 뽑아내어 붙이고,
분류표에 맞춰 책을 정리하는 일들이
내겐 더없이 즐거운 작업이었다.

책을 다루는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나의 숨도 고요하고 평안했다.

성격도 많이 변했다.
나는 그 전에 밝은 아이이긴 했으나
그저 착하고 물러터진 아이였다.
싫은 걸 잘 내색하지 못하고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그러나 아프면서
나의 내면도 더 두터워진 것일까.
적당히 거절하는 법을 터득했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줄 아는
단단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여느 10대 소녀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

연예인을 좋아하기도 하고,
인터넷 소설을 읽느라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다만 나는
심장에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아이였다.

중·고등학교 체육 시간에는
대부분을 벤치에 앉아 보냈고,
체력장에서는 늘 열외였다.

숨이 가쁘게 운동장을 달리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달린다는 건,
내가 절대 해봐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약은 늘 내 곁에 있었고,
호흡이 가빠지는 날에는
24시간 심전도 기계를 단 채
학교에 가기도 했다.

지각과 결석도 잦았다.
하지만 선생님들께
혼이 난 적은 거의 없었다.
내 몸 상태를 알고 계셨고,
그 배려 속에서
나는 계속 자라고 있었다.

친구들처럼 달릴 수는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나는 늘 학교 사서부였다.

책은 늘 내 곁에 있었고,
그 시간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봄이 지나고,
교실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나는 고3이 되었다.

병을 안고 살아온 시간이
내 꿈까지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꿈꾸고 있었다.

책이 좋고
글쓰는 것이 좋아서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품었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낌없이 사랑해주며
세상을 알려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처음 ‘장래희망’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그 꿈을
이제는 이루어 보기로 했다.


책과 함께 버텨낸 시간 끝에서,
나는 아이들 곁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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