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는 의지

손 끝에서 보낸 신호

by 이랑

열한 살의 가을, 기적이 되기까지


여섯 번째 이야기

살고자 하는 의지
-손 끝에서 보낸 신호



절망 속에서도

치료는 계속되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아침이면 창밖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

등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가까이에서 들리고 있었지만,

내가 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소리 같았다.


하지만 내게

조용히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다시 살아갈 힘을 가지라고,

오늘도 하루를 견뎌보라고.

나에게 활기를 전해주고 있음은 분명했다.


평범한 일상을 잃은 지는 오래였다.

무엇보다도 평범하게 학교에 가고 싶었다.

의료진들이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열한 살의 내게 ‘죽음’이란

아직 만나서는 안 될 단어였다.


.


회진 시간마다

교수님은 찾아오셨지만

좋아지고 있다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다만 더 나빠지지 않음에만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버텨지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나는 그저

아픔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만 가득한 터널을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느낌이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그리고

살아야 했다.


나를 위해서도,

내가 전부인

엄마를 위해서도.


매일 나 몰래 나가서

울고 오는 엄마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 울지 마. 나 살 수 있어.”


내가 왜 죽어야 해.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아직 꿈도 못 이뤘는데.


그 말이

엄마를 더 아프게 했을지,

아니면 버티게 했을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


그리고 그 간절함이 닿았던 걸까.

절망만 가득하던 그 시간 속에서

아주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의료진이 내 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손가락 끝, 손톱 주변의 살이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와사키병의 회복기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었다.


그 손가락의 살 벗겨짐은

아프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그것은 처음으로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였고,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단어가

조심스럽게 꺼내질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 작은 신호에

다시 의료진들이 병실로 모여들었다.


내 두 눈,

손가락 끝,

변화가 나타난 부위를

유심히 살폈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엄마는 그 변화 앞에서

처음으로 울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아무 말 없이 오래 바라보았다.


그 침묵 속에는

그동안 삼켜왔던 두려움과,

다시 살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함께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회복’이라는 말을 마음속에 품기 시작했다.


.


변화는 계속 이어졌다.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빠졌다가

다시 나기 시작했고,

눈의 흰자도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딸기처럼 빨갛던 혀도

점점 붉은기가 옅어졌다.

나는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숨을 지켜주던

산소호흡기를 떼고

스스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중환자실을 벗어나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인 그 곳에서

나와 엄마가 버틴 시간은

한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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