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신채윤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해. 음악은 시끄럽지 않은 걸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2004년에 태어난, 아직 채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작가는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다. 2019년 급작스럽게 희소질환 진단을 받았지만, 그래서 그의 삶에서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와 동시에, 또 많은 부분은 변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병이 있다고 해서 나의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아픈 나”도, “나”니까.
하지만 작가는 분명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오히려 병이 있기 때문에, 그는 또래의 다른 이들과는 다른 시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내 위치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믿었던 것, 성적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내 앞에 있는 세상이 꼭대기만 보고 올라가는 좁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종탑이 아니라 평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좁고 높은 탑을 올라가는 무리에 합류하려다가, 병이라는 거대한 망치가 탑을 부숴버리고야 비로소 내 앞에 평원이, 바다가, 산이, 강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 51)
내게는 이 작가와는 다른 종류의 희소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의 엄마로서, 나는 늘 생각한다. 이 아이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때때로 아프고, 아파서 슬픈 날들이 존재하지만, 그 아픔과 슬픔에 압도되지 않고 살 수 있으려면 이런 “병이 있는” 사람에게도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이 아이가 보통의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게 된다면 그런 의미 있는 삶을 일구어 나가기가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 작가가 들려주는 학교생활 이야기를 읽으며, ‘입시 중심’의 학교생활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러니까 ‘입시 중심’의 학교교육이 여전히 문제라는 걸 알았다. 여전한 현실이 무겁고 아프면서도, 당장 그 문제에서만큼은 벗어날 수 있어 홈스쿨러/언스쿨러 양육자로서 안도했다.
이 병을 안고 얼마나 살게 될지, 앞으로 얼마나 아프게 될지 알 수 없는 희소질환자의 삶이지만, 나의 아이에게도 작가에게도 소중하게 지켜야 할 일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아프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픈 순간에도 살아가는 것(p.101)이다. “병에 걸렸음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게 아니라, “병이 망칠 수 없는 일상의 웃음이 있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춤추고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병이 있는 아이의 엄마다. 내 아이의 삶도, 나의 삶도, 망하지 않았고, 망쳐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