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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 어른이 Aug 22. 2021

주변으로 벗어난 삶의 가치

에너지가 축적된 경계에서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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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같은 층에 근무하는, 광물 전문가이며  유학 중 바리스타 자격증을 보유한 이력을 가진 직원과 커피 원두의 선택과 로스팅 그리고 분쇄 과정이 마치 제철소의 철광석을 처리하는 공정과 유사점이 있다는 소재로 가끔 차 한잔의 여유를 공유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대만 출신의 호주 국적자이다. 외국인으로서 한국, 그것도 지방 소도시에서 사는 삶이 녹녹지 않지만, 그 반면 우리가 ‘당연한 일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져다주는 혜택과 가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공인인증서를 받는 일, 인터넷 쇼핑, 그리고 세금과 부동산 거래,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여 학교를 보내는 일 등 현지인이 갖는 무심한 일상이 외국인에게는 ‘모두 다 증명해 내야 하고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했다. 반면 주변인(경계인)이 누릴 수 있는 양쪽 영역에서의 장점 또한 가질 수 있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불편함이 있지만, 내부인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계 안의 불합리함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또한 경계를 뚫고 들어가거나 나가는 경로에 대해 관찰할 수 있어서 내부인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취약성도 구분해 낼 수 있다. 고용탄력성이 확립된 다른 사회에서 성장한 그녀의 시각에서는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갖고 있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의아해 보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큰 혜택임을 지적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웃들과 살아온 그들에게 같은 피부색과 언어로 구성된, 그렇지만 글로벌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우리네 기업을 무척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직장에 대한 개념이 변하고 있고 또 반드시 변해야 한다고 논의가 시작된 지 오래되었다.   더 이상 종신고용에 대한 회사의 책임의식이나,  평생 의지만 있다면 다닐 수 있다는 분위기가 사라진 오늘의 직장에서 개인은 지금까지 유효했던 방식을 고집할 수 없다.  지연, 학연, 직업, 성별 등으로 나누는 일에 익숙한 과거에는 힘써 중심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최선의 가치로 살아왔다.  우리나라는 어떤 형태의 사업을 구상해도 제한적인 시장 크기가 불만이다.   그럼에도 지리적으로도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 등에 둘러 싸여 있으나 정보통신의 급속한 발전과 효과적인 물류시스템으로 더 이상 대한민국 영토 안으로 제한될 필요가 없다. 그렇기 위해서는 어떤 여건에서도 변함없는 호환적 능력을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통해 물리적인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 그럴수록 더 많이 경험하게 될 경계 안과 밖의 구조와 소통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국내에만 성장했고 한 직장에서만 평생을 지내온 내게 그런 모습은 대략 관념적 추정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면서 불완전한 사고라는 지적을 감수하고 자문해 본다.  진정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주장하는 모습으로 역동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이미 많은 경험과 어느 정도 단단해진 현재의 나도 역시 제한된 조건과 환경하에서 성장했고 견고해졌기에 확신할 수 없지만, 어쩌면 부딪히면서 겪어내는 과정 중에 자주 두려움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자녀들이나 후배들에게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준비하되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격려하고 싶다.  내가 상상한 두려움이 21세기 선진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에게는 그리 문제 되지 않는 유형일 것이기 때문이다.  경계인이 가질 수 있는 불안정함이라는 그 부족감이 좋은 구동력(driving force)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학문분야인 금속 조직학에서 ‘경계(Boundary)’라는 용어는 이렇게 정의된다.   "에너지가 집적된 곳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변화(변태, transformation)를 유발하여 이 재료의 특성을 개선 혹은 악화시키는 지점’.  즉, 축적된 에너지는 이 경계에 누적되어 어느 순간 이것이 힘(driving force)이 되어 다른 형태의 경계를 형성시키고 전체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재료의 강도와 연성(ductility)이 개선되어 강하지만 잘 변형되어 복잡한 형상으로 제품 화될 수 있는 핵심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경계는 에너지가 집중된 곳이다. 그 축적된 에너지로 인해서 경계 안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변화와 혁신이 가능하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한 두 개 이상의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주류로 경계 안의 중심이 되었다가도 다시 일의 권한과 역할이 어느 순간 바뀌어 경계 안에서 경계 밖으로 벗어나곤 한다.  즉, 어떤 형태이든 모든 삶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주변과 중심의 경계를 넘나 든다.  주변인이 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 위기, 좌절이라고 표현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중심에서 멀어질 때 더 원숙하고 객관적이며 통합적인 자신과 시스템에 대한 관찰과 평가가 가능한 관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미래를 예측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는 불안하지만,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그 경계에서 획득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물질적이고 정량적이지 않다는 생각과 그 순간을 큰 압박으로 느껴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보는 탈중심화(decentering)의 자세가 필요하다.  

  무선 네트워크로 작동되는 데스크톱 컴퓨터를 통해 유추해 보면 본체에 해당되는 장치가 '중심'이라고 하지만, 주변기기로 구분되는 마우스, 키보드, 외장 장치, 모니터 등은 어쩐지 독립적인 느낌이다. 아무리 좋은 성능과 견고함을 갖는다 하더라도 중심은 고립되어 보이며, 주변장치의 도움 없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이라는 용어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한 가지, 신영복 교수의 지적대로 변방성이 변화의 공간이 되고 이를 통해 창조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콤플랙스를 갖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에 있지 않고 주변에 있다는 것이 자랑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열등감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그의 생각이 깊은 울림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중심부인 서울,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리고 첨단 산업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사양산업의 끝자락에서 역할을 마무리하고 있는 주변인의 모습으로 사는 나와 내 동료들에게  대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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