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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 어른이 Aug 24. 2021

수염 기르는 한국 남자에게만 질문하는 사람들

경직된 세상에서 개인의 다양성 시도기


 전통기업의 전형인 철강회사에서도 몇 년 사이에 여러 형태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내가 관장했던 생산라인의 젊은 엔지니어와 근무자 중 비교적 젊은 층에서는 쉽게 그런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짧게 올려 깎은 옆머리에 구레나룻을 길게 연결하여 강렬한 인상을 스스로 보이는 직원, 콧수염을 무심하게 기르다가 다시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을 반복하는 엔지니어, 총천연색 컬러로 염색한 머리를 휘날리며 공장 운전을 하고 있는 교대근무자, 그런 변화가 이미 현장의 수많은 젊은 세대를 통해 감지되고 있다. 공통적으로 보면 이미 기존 질서에 잘 길들여? 진 기성세대와 함께 근무하고 있는 그들에게 기성세대들이 처음에는 계속 질문을 했던 것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런 의문을 갖는 윗 세대에게 다행히 최근에는  '직장 내 갑질 문화' 방지에 관련된 제도의 도입으로 그런 외적인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기에 쉽게 허용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조금씩 수염을 기르고 있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얼마 전까지 출석교회의 외국인을 위한 영어예배에서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르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전혀 의문을 갖지 않던 한국인 스태프들의 반응을 경험한 후였다.  마침 10일 정도의 휴가를 보내면서 수염을 미처 깍지 않고 나타난 나를 보고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던지는 여러 질문들을 들어야만 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당시 7살 정도였던 어느 스태프의 자녀인 유치원생이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질문했다. ‘왜.. 수염을 안 깎아요?'  순간 그 질문에 내가 반문했다, '왜 나한테만 그걸 묻지?  제레미에게도 그렇게 물어봤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레미는 한국 여성과 결혼한 전형적인 백인 미국인이다.  그때 나는 어린 그에게도 우리 사회가 갖는 공통의 편견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난 지금까지 적절한 수준의 수염을 기르고 있다.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고 있기에 여간해서는 진면목? 이 노출되지 않아 만나는 상대들의 준비되지 못한 반응을 완화시킬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내가 속한 기관에서 거의 최고의 연장자 축에 들고 있는 내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는 않지만 나를 처음 만나는 이들의 눈빛에서 의구심 가득 찬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수직체계가 견고한 조직체에서는 이른바 윗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미묘한 표정이나 표현 하나하나가 그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그로 인해 나를 향한 실낱같은 관용이 철회되지 않을지 하는 염려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이젠 용기를 내는 것도 더 이상 그런 평가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불운?을 더 이상 염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내려놓음이 가능한 상황인 것도 한몫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가끔씩 용기를 내어 질문하는 이들에게 어색하거나 당황하지 않도록 들려줄 몇 가지 시나리오를 가지고 대하고 있다.

' 매일 수염을 깎으면 작은 입자가 미세먼지가 되어 생태계에 위험을 줄까 봐.. 적당한 크기로 기른 후 가위로 자르면 환경에 도움이 되잖아', '응, 나만의 텃밭을 운영하고 있어, 매일 조금씩 자라는 하얀 것과 까만색의 두 가지 작물을 키우고 있지^^.


  구한말 일제의 단발령에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지키려 했던 긴 머리와 수염을 한 세기가 지나지 않아 내가 속한 세대는 오히려 그런 모습을 기이히 여기는 시대를 살아왔다. 역시 강제적으로 페르시안 제복으로 치장한 일본제국의 강제권유로 입어야 했던 고종황제의 양복 입기가 남성이 가장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 반드시 입고 나타나야 하는 형식이 되었다.  

  나의 최근 수염 기르기는  전형적인 경직된 형태의 직장에서 개인의 다양성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실천하고 싶었고, 오직 남자에게만 허용된, 그리고 이방 수염? 이 아닌 나의 이 차별 특성을 존중하고 싶어서 시작되었다.  나의 조그마한 일탈 시도를 통해 조금씩 우리 사회가 지양해야 할 획일적인 문화에 대해 조용히  저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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