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잘 살고 싶다.
‘나를 위해 살자, 나를 위해 살자.’라고 수없이 스스로 되뇌었다. 내 안에서 행복을 찾자,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안에서 욕심내지 말자, 주관이 확실한 사람이 되자라고. 하지만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과시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인정한다. 내가 잘 되고 싶은 건 결국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학부시절 친분이 있던 교수님과 메일을 통해 안부를 주고받았다. 교수님은 방황하는 나에게 좋은 조언을 많이 해 주셨다. 졸업 후 한동안 이어지던 연락은 내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며 자연스레 뜸해졌고 어느새 잊고 지냈다. 그러던 와중 교수님이 책을 출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메일을 보낸 건 재작년 교수님의 북토크에 참여하고 1 년 만이었다. 1 년 간 주저하다 나에 대한 생각이 조금 자리 잡은 후 메일을 보낸 용기가 생겼다. 그간 나의 사정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항상 내 상황이 불안할 때만 연락을 드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메일을 쓸 때마다 그다음 연락은 좋은 소식을 전하길 바랬지만 현실은 바람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고 싶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좋은 일만 공유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타인의 인정은 강한 동기가 된다. 우리는 나를 인정해주는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에게 평가받지 않고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싶다 생각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를 만드는 건 타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타인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잘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자랑스러워하면 좋겠다. 나의 아이가 컸을 때 엄마를 당당하게 소개하면 좋겠다. 나를 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자랑거리가 되면 좋겠다.
나를 찾는 과정에는 결국 내가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는 것도 포함된다. 허영심, 과시욕, 그 외 속물적인 마음들까지.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이런 생각들을 품고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고 내가 원하는 나의 길을 찾고 싶은 마음에 또 다른 이유를 덧붙여 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잘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