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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Oct 18. 2021

[30대의 자아찾기] 안 해 본 일 하기

주식, 선생님, 운전

무척이나 오랜만의 글이다. 긴 시간 동안 글을 못 쓴 이유는, 핑계라면 핑계지만, 바빠서였다. 우연히 듣게 된 수업이 짧은 실습으로까지 이어지고, 해보지 못한 일을 시작하는 스트레스에 살이 빠질 정도로 힘들었다. (덕분에 작년에 꽉 끼던 여름 블라우스의 소매 단추가 잠기는 기쁜 일이 함께 따랐다)     

어쩌다 보니 올해는 내가 평생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일을 벌써 세 가지나 하고 있다.     


첫 번째, 주식     

나는 꽤 겁이 많은 편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고민이 많고 이런저런 조사를 다 해봐야 시작할 수 있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잘 알지 못하는 주식은 시작할 엄두도 내지 않고 있었다. 주식에 관한 공부를 끝내고 확신이 설 때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주식을 시작했다. 밤에 샤워하다가 ‘이마트 주식이나 사볼까?’하고 다음 날 계좌를 만들고 주식을 샀다. 그 주식은 지금…….(참고로 내가 이마트 주식을 산 시점은 쿠팡 상장을 앞둔 시기였다)

 주식을 시작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은행 금리였다. 예·적금이 만기 되고 재가입을 하려는데 2%도 안 되는 금리를 확인하고 이것보다는 수익을 내자는 심정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여전히 주식은 하고 있지만 바쁘다 보니 주가를 안 보고 넘어갈 때가 많아 매도 시점을 놓치기 일쑤다. 나랑 맞는 듯 안 맞는듯한 주식이다. 그래도 주식을 하고 나니 모르던 세계가 조금 보인다.     


두 번째, 선생님     

나는 인문대를 나왔다. 대학 시절 동기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알바 중 하나가 학원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룰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선생님을 할 순 없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나 회사 인수인계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가르쳐본 적이 없다. 사실 인수인계를 하며 즐거움을 느끼긴 했지만 배움을 전해주는 일이 나와 맞는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나는 6개월간 ‘선생님’이란 직함을 달고 아이들과 성인을 가르쳤다. 내 입으로 ‘선생님이 해줄게.’ ‘선생님이 도와줄까?’, ‘선생님 보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학생들은 내 이름은 몰라도 선생님이라 부르며 나를 따랐다. 짧은 기간이지만 경험을 통해 선생님이란 일이 나와 완전히 맞진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못 할 일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지난 6개월의 수입은 지금까지 살며 가장 힘들게 번 돈이었다. 살이 5kg이나 빠졌다. 워라밸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24시간 내내 수업을 어떻게 꾸려갈지 고민했고,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일어나 새벽 늦게까지 수업 자료를 뒤지고 있었다. 20대 시절 회사를 이렇게 다녔으면 뭐가 돼도 됐을 거다. 지나고 나니 부족함이 많았고 남는 건 아쉬움뿐이지만 그래도 잘 보냈고 이와 관련된 다른 일들도 준비하고 있다.     


세 번째, 운전     

2013년 면허를 땄다. 그리고 면허를 따기 전 연습 주행 중 사고를 냈다. 운전학원 비용을 아낀다고 아빠 차로 연습을 하다 갓길에 주차한 트럭을 박고 조수석 문을 박살 냈다. 학원비 몇십만 원을 아끼려다 백만 원이 넘는 수리비가 나왔다. 그 사고 뒤로 어떻게 면허는 땄지만 잠재적인 공포감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운전을 한 적은 없다. 그러던 내가 운전을 시작했다. 주식처럼 충동적인 계기였다. 일정 때문에 아이를 도보 등원시킬 일이 종종 생기고 궂은 날씨에 비 맞으며 고생하다 보니 운전을 해야겠단 생각이 스멀스멀 마음속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남편의 회사가 주차가 번거로운 시내 중심부라 주말만 차를 이용하고 있다. 어느 날 폭우에 비를 맞고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 지하주차장을 통해 올라오며 차를 마주했다. 남편은 회사에, 아이는 어린이집에, 나는 비 맞으며 외출하고 오는데 차는 지하주차장에서 편히 쉬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고생이 겹쳐오며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던 중 마지막 수업을 맞이했다. 일을 끝내며 나를 위한 선물 하나쯤 하고 싶다고 생각하다 내린 결론이 운전 연수였다. 충동적으로 연수를 신청하고, 남편 동행하여 연휴기간 동안 운전을 하고, 지도를 달달 외워가며 운전을 하고 있다. 이 좋은 걸 왜 지금까지 안 했을까 생각하며 운전이 주는 편안함과 초보의 불안함을 동시에 느끼며 도로에 나간다. 아직도 두려운 마음에 장거리 운전은 못 하지만 점점 나아지겠지.

           

안 해본 일을 세 가지나 이루고 나니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바디 프로필까진 아니더라도 다이어트 정도는 올해가 가기 전에 성공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단정 짓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게 종이 한 장 차이란 걸 느낀 202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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