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햇살 Mar 29. 2022

[선생님일기] #1.다음 주에 다시 만나요.

다음이라는 약속

"선생님 다음에 또 오세요."
"선생님 우리 계속 수업하면 안 되나요?"
"다음 주에도 만나면 좋겠어요."


수업을 하며 내가 가장 감동을 받았던 아이들의 한마디.

바로 '다시 만나자'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평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아이들에게 다시 만나자는 말을 들었다. 기관 수업을 나가며 한 공간 속에 있지만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다양한 성격에 놀랐다. 이야기가 하고 싶어 수업시간 내내 종알거리는 아이가 있나 하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거나 귓속말로 겨우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아이도 있다. 감정을 잘 표현하는 아이들은 처음엔 적극적이지만 나중엔 산만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반면 얌전한 아이들은 처음에는 데면데면 하지만 익숙해진 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유치원 수업을 나갔을 때였다.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이 반에서 가장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는 누구냐는 질문을 했을 때 아이들이 지목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아이였다. 대체적으로 그 반 남자아이들은 모두 활발했기에 더욱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질문을 해도 손을 들어 먼저 답하지 않아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를 지목할 일이 없어 사실 나는 몇 주간 그 아이의 이름을 잘못 알기까지 했다.

 아이들에게 할 거리를 나눠준 후 돌아다니며 봐주는데 그날따라 유독 그 아이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몇 마디의 칭찬을 해주었더니 아이가 쑥스러워하며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가 나는 참 좋다. 아이와 만나는 것도 결국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이라 아이가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지 느껴진다. 순간의 반응만으로도 감정은 전달된다.


수업을 끝내고 나가는 길 그 아이가 문 근처로 오더니 말을 건넸다.

"선생님 다음에 또 오세요."

그래, 라며 웃으며 대답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가는 길을 배웅해주며 수줍게 건넨 말 한마디가 백 마디 말보다 더 감동이었다.





또 다른 기관 수업에서 만난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있다. 평소에 얌전한 아이로 수업 내용에 따라 참여 기복이 큰 아이였다.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분야 수업을 하면 예상을 뛰어넘는 대답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그렇자 않으면 시큰둥해했다. 아이가 관심 있는 주제로 수업을 한 날 아이의 멋진 대답에 나는 중간중간 칭찬을 했고 만들기를 할 때 너무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이 너무 감동했다는 말을 전했다. 결국 마지막엔 몰래 스티커 하나를 아이 손에 쥐어줬다. 계약상으론 그날이 마지막 수업이었고 추가 수업 요청으로 2주 정도 수업을 더 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사실을 아이에게 말해주니 교실을 떠나는 나에게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다음 주에도 만나면 좋겠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평소 인사도 잘 하지 않던 아이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자기의 감정을 전달했다.



내가 활발한 성격이 아니기에 조용한 아이들의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용기와 애정을 담고 있는지 안다. 말을 전달할 때 아이의 눈빛, 그 말투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다. 결국 사람을 만나고 나를 전달하는 일은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활발한 아이들은 아이다워 좋고, 감정 전달이 서툰 아이들은 마음을 열었을 때 진심이 배가 되어 좋다. 힘들다 힘들다 이야기해도 결국 나는 아이를 만나는 일을 계속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30대의 자아찾기] 남의 성공에 흔들리지 않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