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자마자 맞이했던 봄의 순간은 시간이 흘러도 생생하다. ‘스무 살의 봄’이라고 정의 할 수 있을 만큼 나를 스쳐 지나간 다른 봄들과 차별되는 기억들이 몸에 아로새겨져 있다. 스무 살의 봄으로부터 십수 년이 훌쩍 지난 3월의 아침, 아이를 등원시키고 걸어오는 길 새 운동화를 신고 조심스레 걷는 사람을 보게 됐다. 그 사람은 운동화가 꽤나 마음에 드는 듯 잠시 멈춰 운동화를 이리저리 살펴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순간의 장면은 나를 스무 살의 봄으로 회귀시켰다.
3월이 되면 내 기억 사이에 숨어있던 ‘새 운동화’가 떠오른다. 아직은 쌀쌀했던 3월의 초, 대학교 입학식 날임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1교시 수업 출석을 위해 이른 시간 버스를 타러 집을 나섰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기에 야속하게 배정된 전공필수 1교시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늦어도 8시 까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열심히 멋을 낸 옷차림을 다듬고 아직은 어색한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뒤 조심조심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동창을 만났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아이였다. 어떤 때는 꽤 친한 친구라 부를 정도의 친분을 가지기도 했지만 긴 시간 동안 겹치지 않았던 인연으로 같은 동네 사는 아이라는 정도의 이름을 붙일 사이가 됐다. 친분의 두께는 얇아졌고 속사정을 털어놓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아이가 재수를 결심한 사연은 다른 친구를 통해 건너 들어 알고 있었다. 정류장에서 마주친 아이에게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물었다. 대학교에 가는 나와 달리 친구는 재수학원에 가는 길이라는 말을 전했다. 몇 달 전만 해도 같은 학교에 등교하던 여고생 둘은 스무 살의 봄이 맞이하며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인생의 전환키를 돌리는 중이었다.
3월 2일, 둘 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짧은 인사를 끝내고 어색한 정적이 흐르는 사이 친구의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새 운동화로 보이는 새하얀 빛을 뽐내는 나이키 포스였다. 나의 검정 구두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상하게 친구의 운동화가 결연해 보였다. 멋을 내기 시작한 스무 살의 봄과 다시 미래를 재정비하는 스무 살의 봄이 대비되는 느낌이랄까. 운동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새로운 운동화를 사고, 그 신을 신고 나왔을 때의 친구의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몇 년 후 그 친구는 국립대에 입학했고, 더 몇 년 후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뒤로 다시 만날 기회가 한 번 있었지만 급하게 친구의 상사가 호출하는 바람에 만남은 무산됐다. 그 후로도 종종 친구가 잘 산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직접 연락하고 지내는 일은 없지만 길을 걷다 새 운동화를 신은 타인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친구의 운동화가 생각난다. 3월, 새 운동화가 참 잘 어울리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