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엄마의 조각

초등학교 입학식

by 겨울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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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겨울의 찬 기운을 품은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입학식 날 남편과 함께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초등학생이 된다는 기대감에 부푼 아이와 달리 내 가슴엔 먹먹함이 차올랐다. 흐린 날씨도 기분을 가라앉히는 데 한몫했다. 울면서 어린이집에 들어가던 백 센티미터가 안 되던 아이의 작은 뒷모습부터 최근 유치원 졸업식에서 늠름하게 졸업장을 받던 모습까지 그간 아이와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교실에 앉은 아이의 모습을 보며 센티 해지는 내 마음과 달리 아이는 학교가 너무 좋다며 들떠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기특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사실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 변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의 불안함이 더 컸다.



아이를 키우면 많은 최초의 순간을 경험한다. 육아의 가장 황홀한 부분은 사람의 성장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를 키우며 한 생명체의 성장은 정말 작고 촘촘한 조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육아에 대한 기억은 모자이크 조각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과 같다. 어른이 된 후 내가 만들어낸 기억들이 커다란 클레이 조각을 뭉쳐 쌓아 올리는 탑과 같았다면, 아이를 낳은 후 내 삶에 대한 기억은 아이를 중심으로 작은 조각들을 모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어릴 적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경이로운 성장의 순간을 목격하며 때로는 십 일을 기준으로, 때로는 월을 기준으로, 때로는 백일을 기준으로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기록하고 기억했다. 혼자 해내는 이 작업들을 통해 아이의 촘촘한 순간들이 내 속에 깊게 새겨졌다. 언젠가 이 기억을 아이에게 무용담처럼 전달하는 날을 그리면서 말이다.


초등학교 입학은 작은 조각들이 좀 더 큰 조각으로 변화하는 순간이었다. 아직 내 손에 쥐어진 작은 기억의 조각들을 붙잡은 채 조립을 마치지 못했는데 큰 조각이 눈앞에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완전히 판이 변해버렸다. 그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을 때 아이가 자신의 조각을 직접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해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많아지며 몸은 편해졌지만, 다른 불안감이 나를 덮쳐왔다. 엄마의 고됨을 모르고 육아를 시작했듯 학업을 중심으로 한 아이의 성장을 인지하지 못하고 학부모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도 잘 해냈듯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 스스로를 토닥이지만 초조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독립심이 강한 아이는 입학식 다음 주부터 혼자 학교를 오가기 시작했다. 나는 한 달이든 일 년이든 학교와 집을 오가며 아이를 마주할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었건만 생각보다 더 빨리 나의 품을 벗어났다. 아이의 뒤치다꺼리로 가득 채우리라 생각하며 비워둔 나의 시간이 텅 비자 해야 하는 일을 손에 잡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나도 이제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어린이집에선 매일, 유치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키즈노트라는 앱을 통해 아이의 생활 모습을 알려줬다. 종일 아이를 끼고 살던 시기를 지나 기관에 아이를 보내기 시작한 후 엄마 없이 생활하는 아이의 모든 모습이 궁금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던 사춘기의 마음처럼 사랑하는 아이의 모든 것이 알고 싶었다. 아이가 집에 돌아온 후 하루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없는 아이의 기억을 엿보고,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소식과 사진을 통해 엄마가 차지하지 못하는 시간의 조각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그 조각을 얻기 어렵다. 아이의 입을 통한 제한된 소식을 들으며 어떤 친구와 친한지 엄마가 없는 공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보려 애써보지만, 듬성듬성 이어진 흔적으로는 예전만큼 알아낼 수 없다.


내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가만히 불러보았다. 엄마가 된 후 아이의 조각을 연결하느라 잊고 있던 내 조각을 돌아보니 내 아이가 만들어 나갈 순간들이 그려졌다. 자신의 순간을 직접 들고 조각을 맞추기 시작한 아이의 곁에서 내가 해줄 엄마의 몫은 예전처럼 조각을 직접 놓아주거나 모든 조각을 손에 쥐려 애쓰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로서 아이의 옆을 지키며 커다란 조각 몇 개를 제시하면 아이는 내가 모르는 자신만의 조각을 만들어내며 하루를 채우기 시작했다. 내 삶에서 아이의 큰 부분이 빠져나간 만큼 나는 또 나를 위해 아이를 위해 어떻게 그 공간들을 채워나갈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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