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견자(犬)에 대하여

그 순간만 존재하는 것들

by 저나뮤나

개견자(犬)를 바라보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큰 대(大)'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개'가 된다.


대는 사람의 형상이라 했던가, 척추를 세운 것처럼.


견은 개다.


닮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다르고, 다르다고 하기에는 그리 다르지 않다.


하긴 어디 개라는 게 그 정도에서만 이상할까.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회색 핏불 한 마리가 파란 목줄을 한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줄은 느슨했고 주인의 손에도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개는, 사람을 끌고 가는 부류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신호가 바뀌자 내가 먼저 움직였다.


개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주인의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핏불의 옆에 선 여자는 끊임없이 개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직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


그 말 한 마디에 핏불은 귀를 세웠다.


이해했다는 듯이, 아니 이해한 것처럼, 자세를 낮췄다.


이제 괜찮다는 말이 떨어지면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신호가 다시 바뀌자 여자가 말했다.


"건너자."


개가 일어났다.


나는 말을 걸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강아지가 참 잘 생겼네요."


여자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연습 중이에요. 주인이 없는 개라서요. 곧 입양이 돼야 하는데, 핏불이니까 좀... 쉽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요즘엔 많이 나아졌어요."


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주인이 없는 개라는 말이 예상 밖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신호에 따라 반응하던 그 존재가 사실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


그 모순이 어쩐지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와 개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회색 털에 파란 목줄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개였다.


엉덩이를 경쾌하게 흔들며 걸어갔다.


나는 그들이 향한 반대 방향으로 말을 던졌다.


"잘 해결되면 좋겠어요. 행운을 빌어요."


내 말은 그들에게 닿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닿았더라도 기억 속에 남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만난다 해도 그녀의 얼굴을 알아볼 자신이 없고, 설령 알아본다 해도 말을 건네진 못할 것이다.


그때 제가 한 말을 기억하느냐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무게를 건냈지만 그녀는 이미 충분한 무게를 감당 중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녀에게 더해진 것이 아니라 흘러내린 것이다.


너무 가볍게, 혹은 너무 늦게.


모든 말에는 무게가 있다.


선의든 악의든, 의도와 별개로, 그 말이 다가가는 사람의 어깨에 얹힐 수 있는가 없는가.


문제는 거기다.


나는 다시 개견자를 떠올린다.


시작은 분명 글자였다.


그런데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더니 어느덧 이 모든 이야기가 개소리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순 없다.


생각해보면 개소리가 아닌 말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개는 사람의 동물이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반복이 필요했을까.


어떤 신뢰와 어떤 항복이 있었기에 목줄 하나로 생을 맡길 수 있을까.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개들을 보면 인간보다 낫다고도들 하지만 그건 아마 오해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죽음도, 희생도 없다.


그 순간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다만, 존재하고 있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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