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유의 은유
숨을 몰아쉬며 잠에서 깼다. 손을 더듬어 핸드폰 시계를 보니 아직도 새벽 네 시다. 해가 뜨려면 한참 멀었다. 오늘도 잠은 글렀다. 침대에 기대앉아 안경을 찾아 썼다. 벌써 나흘째다.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아니다. 같은 사람이 자꾸 꿈에 나온다. 그리고 같은 말을 한다. 아니다. 같은 뉘앙스를 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다. 나흘 동안 단 한 번도 같은 꿈을 꾼 적은 없다.
오래전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나흘이 특별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귓전을 맴도는 소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 번도 물리적 파장을 가진 적 없었을 그 소리가, 왜 귓가에 맴도는 것처럼 느껴질까. 달팽이처럼 구불구불 원을 그리며 안으로만 파고드는 그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침대머리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새벽 네 시.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풍경과 다르지 않다. 짙은 어둠, 희미한 불빛 몇 점. 저 집들은 주인이 불을 켠 채 잠든 걸까. 아니면 나처럼 잠들지 못해 어둠과 밤을 끝내 마주하고 있는 걸까. 짙은 어둠이 두려워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새벽 네 시의 하늘은 특히 그렇다. 새벽 두 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잠자기 힘든 사람에겐 더없이 좌절스럽다. 온 힘을 다해 눈을 감았건만 여전히 어둡기만 한 하늘은 두렵다.
나는 생각한다. 아니다. 나는 그렇게 능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다. 꾹꾹 눌러놓은 생각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꾸역꾸역 밀려 올라온다.
#생각 1
- 사과는 에스프레소랑 먹으면 맛있는데.
- 에스프레소를 사과랑 먹는 게 아니고?
- 응, 아니야. 하지만 그게 좋다고 억지로 권하지는 않을 거야.
- 뭐야, 같은 얘기 아니야?
- 아니지. 사과가 중심인지 에스프레소가 중심인지 하는 얘긴데, 그게 어떻게 같아.
말장난. 말꼬리. 대화는 형식도 주제도 없었건만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친구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보다가도 대개는 귀엽다며 웃었지만 우리는 늘 진지했다.
커피나 능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에스프레소와 사과의 이야기였다. 눈치챌 수 있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이야기였다.
의미라는 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소리 위에 덮여지고 무의식적 순간을 붙잡는다. 무언가 가져다 붙이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 거다.
#생각 2
동네 놀이터의 쇠줄에 매달린 그네를 타고나면 나는 꼭 손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저 하늘로 날아가 버릴까 봐 두 손을 꼭 쥐고 타던 그네에서 내리면 땀이 밴 손에 그넷줄 냄새에 배어있었다.
가끔은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붉게 부푼 물집은 신기하게도 통통하고 예뻤다. 가을빛을 닮은 사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과.
어린 시절 이제 막 그네 위에서 균형을 잡고 높이를 즐기기 시작하던 때였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그네를 타며 사과를 먹었다. 여전히 한 손은 그넷줄을 움켜쥔 채였지만 다른 한 손에는 그넷줄 대신 사과가 쥐어져 있었다.
한 입, 두 입. 세 번째 입을 베어 물기 위해 사과를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중심을 잃었다. 빙그르르 돌던 세상이 바로 섰을 때 나는 사과를 문 채 모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사과도 모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입안에 피와 뒤섞여 범벅이 되어버린 사과와 모래는 별로였다. 사과의 속살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모래 한 알 한 알이 붉게 젖어갔다.
붉게 물드는 것들 앞에서 나는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