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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정 Aug 14. 2021

헬스장 고인물은 피할수록 좋다

엄마의 운동 vol.4

요즘 자주 쓰는 신조어 중에 하나가 '고인물'이다. 원래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해당 게임을 오래 해서 실력이 좋은 유저를 표현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른 탓에 매너리즘에 빠져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새로운 멤버에 대해 적대감을 표현하며 배척하는 유저의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모양이. 아무래도 고인물은 썩게 마련이니까.


당연히 헬스장에도 고인물이 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고인물은 헬창과는 또다른 존재들이다. 헬창은 하루라도 근력 운동을 하지 않으면 허전하고 찝찝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거의 매일같이 헬스장을 찾는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고인물은 해당 헬스장에 오래 다닌 탓에 시스템이나 시설에도 매우 익숙하고 동료 회원들에 대한 인맥도 화려한 사람들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용어다. 그런데 헬스장에서 운동에 전념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고인물을 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게임 커뮤니티에서 고인물을 '매너리즘에 빠져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새로운 멤버에 대해 적대감을 표현하며 배척하는 유저'들을 가리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헬스장 고인물도 비슷한 면모가 없지 않다. 내가 그것을 몸소 체험한 바 있다.

헬린이 시절 칼로리 소모에는 스피닝이 최고라는 얘기를 듣고는 스피닝을 신청한 적이 있다. 초보니까 강사의 말을 잘 듣고 잘 따라 하려고 맨앞 사이클에 앉았는데 주변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뒤통수 쪽에서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자리에 누가 앉아 있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스피닝실과 GX실은 아줌마 고인물들이 가장 텃세를 부리는 장소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입장하더라도 차지하고 싶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고인물들의 전용석을 제외한 자리 중에서 골라야 했다.

물론 내가 다닌 곳보다 텃세가 덜한 곳도 있을 테지만 심한 곳은 훨씬 더 심한 곳도 있다고 들었다. 혹시나 스피닝실이나 GX실에 들어갈 때는 눈치코치 잘 발휘해서 최선의 자리를 차지하길 바란다.


이것은 그냥 내가 경험한 헬스장 고인물 에피소드일 뿐이고, 운동에 전념하고자 할 때 고인물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 헬스장 고인물 아줌마들이랑 일단 안면을 트면 재미있는 일도 많이 생긴다. 

일단 헬스장 갈 때마다 아는 척, 친한 척을 주기  때문에 헬스장이 아주 편안하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운동은 잘 되냐, 살 많이 빠졌다, 오늘 옷 예쁘다, 다이어트할 때 뭘 먹으면 좋다 등등 온갖 칭찬과 정보제공을 선사하는 그들은 헬스장의 MSG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끔은 제법 쏠쏠한 교육정보나 지역정보를 얻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에 열중하게 된다.


바로 그것이 헬스장 고인물을 피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번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시간이 흐르는데, 이때 우리 같은 엄마들은 시간에 제약이 있는 탓에 선택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냐, 운동을 할 것이냐.


물론 그들과의 대화  자체는 즐거운  사실이지만, 대화하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그만큼 운동할 겨를은 줄어든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수다 타임을 줄여야 몸짱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실제로 헬스장 고인물들은 꼬박꼬박 운동하러 나오고 헬스장에 머무르는 시간도 길지만 몸매의 변화는 없다. 왜냐하면 운동하는 시간보다 앉아서 수다 떠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헬스장 곳곳 앉아 있을 수 있을 만한 공간에는 늘 고인물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의 향연을 펼친다. 그곳에 합류하는 순간 운동의 재미보다는 수다의 재미에 빠져 계획했던 운동량을 채우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그들은 '친목 도모'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운동을 마치고 함께 밥을 먹는 것까지를 코스로 잡는데, 이것 또한 몸짱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먹는 것까지 운동'이라는 김종국의 명언을 생각한다면 그 이유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과의 교류에 있어 미묘한 갈등이 생겨 돈독한 관계에 금이라도 간다면 헬스장 자체를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헬스장에서 인사를 나누던 회원이 한동안 보이지 않아 의아했는데, 몰려다니던 멤버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 헬스장도 안 나간다는 소식을 나중에 길가에서 만나 전해들었다. 그런 경우가 의외로 많다.


헬스장 고인물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운동과 다이어트와 몸짱을 목표로 헬스장을 찾은 것이라면 그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운동을 하는 시간에는 나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켜야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누구나 몸짱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몸짱이 될  없다고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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