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떠나지 못하는

물안개인 나, 그대 시린 발등을

by 정이안

바닥, 떠나지 못하는





나무의 머리카락이 붉어지는 것은

뜨거운 조바심이 지나갔다는 거다


나동그라져 무릎 깨어진 산새울음을

내려가는 길에 걸어둔 나무는

산짐승들이 찍어놓은 발자국에

명든 입술을 감추려 든다


떨어져 내려앉은 잎들의 수다는

그때가 좋았어, 그때가 참 좋았지

공중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갈바람이 등을 떠밀지 않아도

미끄러지며 찾아드는 나무의 발치

물안개인 나는 그대 시린 발등을

온몸으로 덮어주고 싶어졌다


살아온 날 부끄럽지 않았으니

머물던 자리 상고대가 걸렸다 해도

내려다보는 하늘이 눈부실 동안은

나무의 발목을 베고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