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는 가짜
"누군가가 그랬다 동거는
결혼이라는 심오한 여정의 장점만을
끌어모은 가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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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생활은 즐거웠다.
같이 장 보러 가는 것도 즐거웠고
이미 신혼부부가 된 것 같았다.
데이트를 하고 나서도
각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나는 결혼식이 다가오면서 점점 더
동거와 결혼은 다르다는 말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단순히 내가 원하는 남자랑
같이 살고 그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
그 이상이었다.
양쪽의 가족도 신경을 써야 하고,
서로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 서로가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가 달랐다.
내가 싫은 건 계속 싫다고 했다.
안 한다고만 했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 무작정 싫다고만 하는
내가 답답했을 상대방.
그 과정에서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나는 조용히 혼자 마음여행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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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왜 그것이 싫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다양한 기억의 조각들이
머리 뒤쪽에서 끌어 올라오면서 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점점 더 생각은 깊어지기 시작했고,
내 마음 깊은 곳 꽁꽁 숨겨 두었던
‘안 좋은 기억의 창고'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내가 다시 떠올리기
힘들어하는 안 좋은 기억들과
트라우마들이 가득 담겨있는 곳이다.
감히 무서워서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가까이 가볼 수도 없었던
내면의 공간이다. 나는 조심스레
‘안 좋은 기억 창고’의 문을 두드려봤다.
조용했다. 조심스레 다가가니
문은 꽤 많이 낡아있었다..
난 그 낡은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드러내야 했다.
내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겉모습 말고,
스스로도 잘 마주할 수 없었던,
내 연약한 모습까지도.
그 문 안에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바닥에 앉아, 웅크린 채 울고 있는.
5
홀을 예약하고 나니
하나씩 단계별로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정리되고 있었다.
원하는 홀을 하기 위해 1년 전에 예약을 했고
스드메를 하기 전까지
시간이 여유로웠다. 하지만
스튜디오 촬영을 할까 말까에 대한
또 한 번의 의견이 충돌이 일어났다.
얼마 전에 여행 가서 스냅사진
찍어 온 것도 있으니
셀프 사진관에 가서 복장만 갖추고
간단하게 사진을 찍고 싶었던 나와
모바일 청첩장에 들어갈 사진인데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하자고 하는 신랑.
결국 이야기를 나누고
홀을 예약하면서 스드메 패키지까지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스튜디오 촬영을 하기 위해 드레스를
처음 고르러 가기 전까지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촬영 드레스를 고르기 전까지 기다렸다.
신혼집은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될 것이고
웨딩링도 생략이니까
크게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우린 추가금파티라는 드레스
피팅을 하기 전에
여러 개의 후기를 읽고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잔뜩 경계태세를 세운채로
웨딩홀로 향했다.
그리고 우린 70만 원의 추가금을 내버렸다.
6
결혼준비로 한창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어느 날
난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 뉴스를 보게 됐다.
[결혼 안 하는 요즘 청년들]
"결혼식을 하게 되면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고 비싸요..
추가금이나.. 간식준비와 같은
말도 안 되는 관습들도 너무 많고요.."
'어? 나랑 같은 생각의 사람들이 있네?'
그간 내 생각이 유별나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에 힘이 실리는 느낌이 들었다.
'허례허식'
왜 드레스에 추가금이 붇고
왜 사진앨범 사진 장수에 따라
추가금이 붙는가
우린 아니었지만 다른 드레스샵에는
피팅하는 비용이 또 따로 든다고 한다.
얼마 전 웨딩업체 관련 뉴스를 접했다.
부당하고 이해 안 가는 것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현재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혹은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식을 올리고 말고는 당연히
본인의 선택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모두 같다는 건
그러한 것들이 개선되거나
사라져야 하는 신호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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