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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미 Dec 09. 2024

영국 아이들과의 첫 만남

" Baby boss "


홈맘이 말했다.

"아이오, 오늘 toast (건배) 할 거야,

새로운 변화가 있잖아?"



아이들과의 첫 만남

 드디어 새로운 시작이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자, 문 앞에서 마주친 첫째, 아이오. 수줍어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속으로 '정말 귀엽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망설임 없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아이오도 금세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빨리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다.


 아이는 하루빨리 다시 학교에 가고 싶은 듯,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설렘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개학을 손꼽아 기다리는 첫째의 반짝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영국은 9월에 입학한다.) 잠시 후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밝은 금발에 누가 봐도 영국 사람 같은 분위기의 여성이 다이닝룸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바로 이 집의 전 베이비시터, 찰리였다. 다소 어색하게 첫인사를 나눈 후, 찰리는 둘째를 데리고 외출을 나갔고, 나는 첫째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가 선물해준 토끼귀 모자를 쓰고 학교에 온 아이


 아이의 방으로 올라가 모노폴리(우리나라의 브루마블)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 영어 실력이 조금씩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겨우 여덟 살인 아이가 어찌나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지 감탄스러웠다. 나의 어설픈 영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그 순간, ‘언젠가 나도 이 아이만큼 영어를 잘하게 될 거야’라는 기대감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첫째는 초등학생답게 상상력이 풍부했다. 거대한 책을 펼쳐 글씨를 쓰는 흉내를 내고, 하늘을 나는 척하며 온 방을 누볐다. 그러다 갑자기 나를 피아노 앞으로 이끌더니 연습하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수준 높은 연주에 감탄하며 박수를 쳤고, 진심 어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첫째와는 금세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루 종일 둘째와 친해질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다. 첫째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독차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나랑만 놀아줘!" 라며 끊임없이 요구했고, 둘째에게 관심을 줄 틈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둘째와 찰리가 외출에서 돌아왔다. 둘째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어린 아기였다. 말을 거의 하지 못했고, 손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 안경을 치거나 휴대폰을 던지려고 하는 등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속으로 고민이 많았다.


매일 수없이 타던 분유

 

 그리고 찰리는 분유 만드는 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물을 끓이고, 숫자 5까지 부은 다음, 파우더 다섯 스푼을 넣고 잘 흔들어. 그다음 찬물에 담가 식히면 돼…." 설명은 간단해 보였지만, 태어나 처음 타보는 분유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녀는 분유를 식히는 동안 능숙하게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런 다음 준비된 젖병을 아이에게 물리고 침대에 조심스레 눕혔다. 분유를 마시며 서서히 눈을 감아가는 둘째를 보며 '이제 좀 쉬어갈 수 있겠구나' 하고 안도하던 것도 잠시, 아이는 갑자기 "으아아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상황이 순식간에 변하자 나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나와는 달리, 찰리는 놀라울 만큼 침착했다.



 "스스로 진정할 시간을 줘야 해. 10분 뒤면 괜찮아질 거야."



 라며 담담하게 말한 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녀의 태도에서 익숙함과 자신감이 느껴졌지만, 처음 겪는 상황인 나로서는 그저 초조할 뿐이었다. 내가 저 아기를 잘 돌볼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둘째가 낮잠 자는 사이 이번엔 홈맘이 내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다. 아이들과 이동할 때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며 오이스터 카드(영국의 교통카드) 사용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외출 시 홈알람 설정법, 집 열쇠 관리까지… 하나라도 놓칠까 싶어 열심히 메모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영국식 시간 표현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다.


홈맘의 요리 그리고 와인


어색한 저녁 식사와 환영

 드디어 첫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런던 음식은 맛없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상하이 출신 홈맘의 손맛은 달랐다. 잘 차려진 음식과 와인이 함께 준비된 저녁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그리고 홈맘이 말했다.



"아이오, 오늘 toast (건배) 할 거야!"

"토스트? 그게 뭐야??"

"우리 cheers(건배)할 거야, 오늘 새로운 변화가 있잖아?"



 홈맘의 따뜻한 환영사와 함께 건배로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여전히 어색했다. 두 아이와 두 어른, 그리고 나까지. 이 새로운 조합은 아직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왠지 동떨어진 '외부인'처럼 느껴졌다. 식사 후 설거지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자연스럽게 홈대디가 이를 맡았다. 미안한 마음에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려 했지만, 어딘가 뒤통수에서 느껴지는홈맘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첫날부터 쉽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이 모든 경험은 배움의 기회라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내 노력은 분명히 결실을 맺을 것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문득 든 솔직한 생각. '아이들이 빨리 학교에 가면 좋겠다....'



그렇게 첫날의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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