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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Aug 22. 2024

별거 10년째(번외편)

<가족이라면... 사랑한다면...>이라는 강박

딸을 낳았을 때의 일이다.

분만실에 같이 있던 그에게 딸인지 아들인지 묻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〇△(이름)다.>

나는 <응?>하고 반문했지만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되었다.


출산 전  그와 <아기 이름은 뭐로 할까?>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그의 이름의 한 글자와 내 이름의 한 글자를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짓고 싶어 했다.

아들일 경우에는 <△〇>로, 딸일 경우에는 <〇△>로 하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〇△다.>라는 말은

바로 딸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제안했던 아들의 이름도 딸의 이름도 둘 다 별로였다.

나는 그 당시 웃으며 다른 이름들도 말해보았지만

그는 <아니, 아들이면 <△〇>, 딸이면 <〇△>라고 단호하게 대답했었다.

나는 그가 아기에게 우리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그런가... 좋게 생각하며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할까 싶어 내 의견을 더 강하게 어필하지도 않았고

왜 그 이름이 그렇게 좋은지 묻지도 못했다.


출산 며칠 후 그가 출생신고를 하고 왔다고 했다.

아기의 이름은  <〇△>로.

나는 내심 매우 당황했지만 그에게 내 생각과 기분을 전할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수고했네. 고마워>라고 답한 걸로 기억한다.


이런 딸의 이름을 결정한 것과 비슷한 에피소드가

결혼 생활 동안 계속되었다...


그가 결정하고 행하는 것들이

나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겼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나는... 사실 마음이 불편한데도 말하지 못해 혼자 앓을 때가 많았다.


나는 왜 내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먼저 신혼 초 우리 사이에 신경전이 있었거나 작은 말다툼이라도 일어나면

그는 늘 이튿날 두통으로 회사를 쉬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할까 봐 덧붙이면 그렇게 쉰 것이 열두 번 이상이다.

그리고 물론 꾀병은 아니다. 결혼 전 그는 두통약을 달고 살 정도로,

MRI도 찍어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두통에 시달렸었다 )


돌아보면 별 일 아닌데 내가 그를 이렇게 괴롭게 했나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되도록 예민한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 했다.


또 내가 직장생활이나 육아로 몸과 마음이 지칠 때

그에게 털어놓으면 대부분 그는...

내 감정과 불안, 불만을 귀 기울여 들어주거나 공감하여 달래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누가 일하라고 했나><그만두던지>

<모두 다 그렇게 힘들다><너만 그런 거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게 말하는 건 그의 성격이고 성향이고 표현이 투박할 뿐,

내가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그를 원망하거나 실망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또한 내가 밝고 상냥할 때

그 역시 부드럽고 따뜻하게 나를 대해 주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내가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 후에야 깨달은 거지만

나는 무엇보다 내가 배려받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부부로 맺어진 인연 안에서 위로받고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은

늘 친정 가족들의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 속에서 자란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뭐랄까... <가족이라면...> <사랑한다면...>

늘 사이가 좋고 같은 편이 되어야 하고

갈등과 대립은 가능한 한 없는 관계라고 하는 강박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더더욱 그에게 상냥하게 잘하려고 애썼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나 자신이 자책감과 비참함에 시달리는 것 대신

내가 더 잘해서 갈등과 대립이 적은, 사랑 넘치는 가족이 되고자

스스로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제한했던 것 같다.


뒤돌아 보면...

나와 애들이 일본으로 온 후에도 우리 부부는 꽤 사이가 좋았다.

나는 기러기 아빠로 외로워하는 그에게 멀리 있어서 챙겨주지 못하지만 늘 걱정하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면... 사랑한다면...>이라는 강박 속에서

그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부인이 되고자 애썼다.


그가 1년여간 생활비를 보낼 수 없다고 했었을 때도

못 보내는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까 싶어

아르바이트와 장학금, 친정에서 받은 것으로 버티며

매일 저녁 전화로 새로운 사업에 고전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매일같이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며 그를 격려하며

그의 몸과 마음을 살폈다.


그 반면

외국에서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석사 과정 중에 생긴

고단함과 괴로움에 대해... 가능하면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괜찮은데

대학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이

수화기 넘어 분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석사 논문을 낼 당시 너무 힘들어서

모든 치아와 잇몸 사이가 벌어져 버렸다.

틀니를 하고 있는 것처럼 이상한 감각이 몇 개월 동안 지속되어

식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물론이고

석사 과정 졸업식도 박사과정 입학식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이 글을 읽는다면

<말하지 않은 것은 너잖아>라고 억울해할 것 같다.

늘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일하고 생활해 왔던 그의 노력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고민과 괴로움을 내게 편히 나누지 못했을지 모른다.

또한 나와 아이에게 느끼게 해 주었던 애정은... 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도 공격적인 말과 태도로 상처 준 일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이좋은 부부라고 자부했던 그와 나...

그런데 사실 그가 불편할 때가 많았다는 것.

배려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는 것!


갈등과 대립을 회피하여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

조율과 타협을 하려는 수고와 노력이 부족했던 것을 반성하고 있고...


더 이상 그의 생각과 방식대로 나를 대하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

이제 <가족이라면... 사랑한다면...>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와의 오랜 별거생활도 청산하고 싶다.

냠냠 :) 생선은 가게에서 사먹어야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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