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타국에 나와 산지 20년이 넘어간다. 영어라는 극복할 수 없는 인생 최대 난관과 부딪치며 일상생활에서 깨지며, 우울한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할 말 많아도 영어가 안 돼 참고,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고 흥분해 버리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다가 이래저래 상처받고 끝났던 많은 일들... 나에게 닥친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마음먹기 시작한 게 고작 1년여... 그래도 어제는 나름 차분하게 흥분하지 않고 의사 전달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잠까지 뒤척일 정도로 억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적절한 단어와 표현들을 이용해 표현하지 못한다는 답답함이 항상 뉴질랜드에서 살며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이었는데 어제 일은 같은 한국말로 더 큰 의사소통 문제를 경험할 수 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줬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뉴질랜드는 의사 처방전에 의해 약사가 약을 조제하고 전달하는데 몇몇의 개인 약국들은 한 개의 약에 $5를 개인에게 부담시키고 나머지는 정부가 부담한다. 그나마 요 몇 년 새에는 $5 surcharge도 안 받고 free prescription을 처방해주는 약국들이 늘어나서 이, 삼 년간 은 약 값으로 돈을 내 본 적이 없다. 대표적인 곳이 Countdown Pharmacy와 Chemist Warehouse다. 마침 집 근처 Countdown 이 있어 1년 넘게 그곳에서 약을 받아 왔는데 약사 두 명이 젊은 한국 남자들이다. 한국말을 잘하는 거 보니 이민 1.5세대. 한데 문제는 이 약국은 매번 약만 주지 어떤 증상에 어떻게 먹으라 설명도 거의 없고 다른 약국들처럼 설명서 들을 따로 첨부해 주지 않아 지난번 서너 가지의 약을 함께 복용할 때 어떤 약이 어떤 증상에 먹는 건지 헷갈려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설명서들을 넣어달라고 카운터에 있던 중국 아가씨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대뜸 이 아가씨 영어로 하는 말이 'Didn't the doctor explain to you about the medication?' 어조나 행동이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서 기분 나빴지만 조곤조곤 얘기했다. 'Of course, he explained to me but as you see there are over 15 different medications in this bag and both of my medications and my daughters are all mixed up in the bag, so I got confused.'
이 아가씨 싫은 티 팍팍 내며 다른 약국은 각 약에 5불 charge를 하지만 자기네는 free여서 그런 서비스를 안 하지만 약 리스트를 복사해 주겠단다. 원하던 게 그거뿐만이 아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근처에서 지켜보던 젊은 한국 남자 약사가 다가와 어떻게 복용하는지 약 각각에 복용법이 붙어있는데 뭘 원하는 거냐 다시 묻는다. 안다. 복용법은 다 붙어 있는 거, 근데 두 사람 약이 섞여있고 약 종류가 많아서 어떤 약이 어떤 증상에 먹는 건지 부작용이 뭔지 설명을 읽고 싶어서 설명서를 따로 넣어달라고 했다 얘기했더니 이 젊은 약사 똑같은 얘기를 한국말로 예의 없이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내며 왜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한다는 투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요인즉슨 '다른 약국은 돈을 받지만 여긴 받지 않는다, 손해를 보며 운영할 수는 없으니 따로 프린트해 주지 않는다. 다른 약국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였다. 그래서 '내가 해밀턴에 20년 넘게 살았는데 Unichrm이나 Life Pharmacy에서는 약과 설명서를 따로 다 받았었다' 얘기하니, ' 저도 여기 오래 살고 부모님도 여기 사시지만 그런 약국을 본적이 한 번 도 없는데요!' 한다. 이건 뭔 말인지... 나의 20년 이민 경험을 완전히 무시하며 말도 안 되는 얘기한다는 건가? 내가 거짓말한다는 건가? 따로 돈 받는 약국들도 있는데 여긴 안 받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서비스는 안 해 준다는 건가? 뭐지 저 무시하는 말투, 눈빛은.....? 별별 생각이 들며 짜증이 확 올라왔다. 화가 났지만 조곤 조곤 다시물었다. '여기 정부 펀드로 운영하는 곳 아니냐, 손해를 운운하는 게 개인 사업이었냐?'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카운트 다운이 자체 운영하는 곳이지만 정부 펀드 받는단다.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단다..
뉴질랜드는 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약들에 한해서는 약국 자체에서 surcharge를 하는 곳 빼고는 개인이 돈을 안 내도 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마치 자기가 손해보고 공짜로 약 받아 가니 그걸로 만족해라라고 말하는 거 같아 화가 더 났지만....말투, 자세, 풍기는 뉘앙스가 정말 싹아지였지만... 알았다 그만 됐다 하고 떠나려 하니, 대뜸 요구를 하니 프린트해주겠다며 기다리란다.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내가 이상한 요구를 한 것처럼 보여서, 됐다. 그만하자 프린트는 다음번 약부터 해 줘라 하고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약국 직원이나 그 약사의 태도가 정당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오늘 아침 Countdown Customer Centre에 전화를 해 Complaint 넣고
Reference Number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직원의 이해한다는 동조의 말과 약국에서 당연히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요구한건데 직원이나 약사가 제대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것 같다는 말들을 들으며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걸 느꼈다. 그래, 해야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왜 속에 담아두고 화병을 키워... 정당하게 올바른 매너를 유지하면서 요구할 건 요구하는게 내 권리다. 잘 한 거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국 약사에 대한 미안 함을 좀 덜어보려 한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 나이도 어린데 좀 봐 줄 걸 그랬나.... )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이런 일을 점점 참지 못한다는 건.... 내가 점점 Karen 또는 김여사가 되어간다는 증거일까 문득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50이 가까이 되어가는 내 나이를 생각해 봤을 때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거에 표현하는 게 전혀 Unreasonable 한 거 같진 않다. 그게 영어든 한국말이든. 살짝 같은 한국사람끼리 complaint까지 넣고 내가 좀 너무 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니 다른 나라 사람이었어도 키위 약사였다면 오히려 더 참지 않고 더 항의를 했을 것 같다. 난 나름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나보다 어리다고 어제 오히려 할 말을 많이 아끼다 보다 더 억울 했던 거 같다.
선을 넘지 않고 예의를 지키며 부당한 일에 참지 않고 스스로를 대변하는 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키우는 건 중요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 시선을 의식해 할 말을 못 하다 보면 화병 생긴다. Karen이든 김여사 든 스스로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권리, 이익, boundary를 침범하지 못하게 지키는 건 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이제 너무 눈치 보지 말고 내 삶 앞에 스스로 당당해 지리라. 그게 살짝 아줌마의 뻔뻔함과 눈치 없음이 필요하더라도..... 아줌마인데 워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