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유튜브에서 '나는 반딧불'이란 노래가 핫하다. 노래를 듣다 보니 나의 인생 몇 페이지가 떠올려진다. 6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어느 시점, 가사처럼 '내가 빛나는 별'인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란걸 알았을 때,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일어나고 싶었다.
트레킹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별 아닌 '그냥 나'를 만났다.
400여 km의 대장정!! 산티아고에 갔다. 계획은 무슨!! 일주일을 앞두고 비행기 티켓을 구하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20여일 동안 프랑스에서 스페인, 포르투갈의 대장정으로 마무리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의 행진!! 매일 아침 등 뒤에서 일출을 맞으면서 걷고 먹고 쉬고 이것이 전부였다. 복잡하고 빡빡한 루틴에서 단조로운 루틴으로 던져졌을 때 다른 생각들이 몰려들었다. 때로는 계획 없이 과감한 도전을 해볼만 하다는 것을 느꼈다. 산티아고에서 깨달은 5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짐을 챙겼다. 성인 1명의 적정 가방 무게는 7~8Kg인데 10kg이다. "그래도 뭐!! 한번 가보지 뭐"라고 생각했다. 걷다 보니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필요할 때 사용하는 물품은 몇 가지일뿐, 모두 혹시나!! 해서 갖고 다니는 것이었다. 파스, 약품, 우비 등을 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고민하는 것들, 생각하는 것들 모두 '혹시나'해서 갖고 있는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치 때가 되면 버려지는 것 처럼 말이다.
내려놓아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일이던, 가족이던, 믿었던 지인 누군가로부터 턱하니 충격을 받을때마다 내려놓아라!! 한다. 깨달았다. 굳이 내려놓겠다 마음먹지 않아도 힘에 부치면, 마음이 쓰리면 내려놓게 되는 것을... 살짝, 느낄 듯 말 듯 가벼워진 가방 무게만큼 마음도 가벼워지기를 기대했다.
내가 정한 목적지와 여정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6~7시에 기상하고 조용히 움직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고 있었기에 등뒤에서 서서히 비치는 일출. 시골길에 진한 향의 커피와 브레드, 순례길에서 낯선 사람들과 수없이 스쳐 지나가고, 알베르게(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 모두 나의 결정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20Km? 23Km? 25Km...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오로지 내가 이끄는 여정이었다.
쳇바퀴로 돌아가는 일상에서 누군가와 부딪히며 타인들의 말과 감정에 끌려가는 하루!! 그 하루도 나의 선택과 결정이었다. 힘들거나 잘못되면 다른 사람, 환경을 탓하는 것도, 나의 실수를 탓하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이었다. 여행에서 내가 정한 모든 것들처럼 내 인생도 내가 선택한 것이었음을. 잘못되었다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어떻게 한발을 더 걸을지 고민했어야 할것을...이 모든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산티아고를 다녀왔다고 하면 모두가 '와~부럽다'라고 얘기한다. 겉모습일 뿐. 발에 물집이 생기고,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의 길을 혼자서 걷는다는 것은 외로움이 공존한다. 모두에게는 사연이 있다.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고, 믿었던 지인에게서 배신당하고, 사업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고... 산티아고에 오기 위한, 아니 왔어야 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보이는 것은 아름답고 예뻤으나 가까이에서 보면 아픔이었고 상처였다. 하루 20여 km를 걸으면서 잡히는 물집은 차라리 다행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속 물집은 연고를 바를수도, 터트려줄 수도 없다. 그 안에서 곪아 터져서 사라지게 할 수 있을 뿐!!
나뿐만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 사람들!! 그래도 괜찮은 듯 보이는 사람들!! 느려진 발걸음에 힘을 보태어 걷기 시작했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듯.
10여일을 혼자서 걸었다. 혹시나 누가 말을 걸을까!! 이어폰을 끼기도 했다. 혹시라도 한국인을 만나 "여긴 어떻게 왔어요? 어디에 살아요?" 대답하기 싫은 나의 신상에 대해 물을까봐였다.
이른 새벽, 어둠이 걷히기 전 갈래길을 두고 몇 명이서 얘기를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이 길이 아닌가"라고 중얼거렸다, 누군가 바로 다가온다. "한국인이세요? 어이 반갑네..."라며...오랜만에 아는 이가 생겼다는 마음에 뭔가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인지 반갑게 다가왔다. 한국인과의 동행 그 시작이었다. 외로운 찰나 다행이다 싶었다.
며칠이 지났다. 다시 혼자이고 싶었다. 조용하게 걷고 싶었고, 자꾸만 전해 듣는 한국의 소식, 한국의 이야기들이 내가 잊고자 했던 어떤 사건들을 자꾸 떠오르게 했다. 애써 잊고 있는데. 방해가 되었다.
답이 없구나!! 혼자이던, 혼자가 아니던,,,
벌레를 조심한다고 약을 엄청 뿌려댔다. 편한 잠보다는 쪽잠을 잤다. 화장실 문제를 예방하려고 매일 저녁 잠자기 전 약을 먹고 새벽에 화장실을 가는 습관을 들였다. 혹시나 분실이 되어서 골치 아플까 봐 '짐 옮기기' 서비스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생활은 딱 정당한 거리에서 멈췄고, 딱 적당하게 잠을 자고, 딱 적당하게 걸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기억될만한 추억이 없었다. 너무 안전했고, 무난한 순례길이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런 재미도, 추억도 없다는 것을. 때로는 재미도, 추억도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어쩌면 지금 이 길을 걷는 것도 내인생의 추억을 쌓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되겠지만, 힘든 순간에는 이 마저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다. "내가!! 어떻게!! 왜!!"라고. 나에게 닥쳐진 상황을 부정하게 된다.
산티아고를 걸을때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서 걸으면 된다. 나침판이다. 조금이라도 한적한 길에서 노란색 화살표가 나오지 않으면 걱정이 된다. 혹여 길을 잃었을까봐.
생각해본다. 각자의 인생에서 나침판은 누구일까? 부모도, 선배도, 연인도, 친구도 아니다. 결국 자신이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를 비추고, 길을 잃지 않도록 밝혀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별이 되기로 했다. 산티아고의 노란색 화살표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