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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조용하지 않을 때 찾는 나의 완벽한 동굴

잠시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할 때 지치지 않는 법

by 비긴어게인


내가 좋아하는 작가 태수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의 글이 생각나는 날이다


< 삶이 고단하지 않는 날, 나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김치찌개를 끓이는 남편이었고, 평소 같으면 쳐다도 안 볼 [나는 솔로]도 같이 보며 잘도 조잘거렸다. 그러나, 삶이 약간만 삐긋해도 내 다정함은 길을 잃었다. 대답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들어 무슨 질문이든 건조하게 답하는 날이 많았다>


최근 며칠 동안 내 다정함은 길을 잃었다. 감정의 체력이 바닥이 나서 기분이 조용하지 않다. 짜증과 날카롭게 튀어나오는 말들은 '잠시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삶에 지치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특별함보다는 '스스로 숨을 돌릴 수 있는 완벽한 동굴' 하나쯤은 필요하다.


하루하루 버티기에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다. 신체의 체력보다 마음의 체력이 바닥나는 속도는 강하다.

나는 그곳으로 갔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아직도 낯선 감정들이 있다.


살면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인생은 최선을 다해도 실패할 수 있다. 열심히 한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운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타이밍!! 어쩜 그리도 중요한지 잘 안다. 직장에서의 커리어는 더 그렇다. 운과 타이밍이 절대적이다. 성과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조직이 와해되었다. 그 갈림길에서 팀원들 모두 고민한다. 나도 고민한다. 여러 갈래길 중 선택할 수 있긴 한건가? 어떤 결론이 최선일까? 바람직한 생각 모드에서 갑자기 정지해버린다. "나는 열심히 했는데, 왜!!"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다 지나가리라' 영원한 순간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럼에도 막막하고 어쩔 수 없는 낯선 감정이 앞선다.


잠시 내 다정함을 찾을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하다.


기분이 저기압이 되고, 귀찮고, 짜증이 날때 찾는 나의 완벽한 동굴이 있다. 바로 찜질방이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곳이다. 큰 열탕에 들어가면 따뜻함과 뜨뜻함의 사이에 문밖에서 했던 고민!! 틈만 나면 찾아오는 피곤하고 복잡한 생각은 잠시 멀어진다.


뜨거운 한증막에 들어간다. 5분짜리 모래시계를 가만히 쳐다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모래들이 쏟아져 나온다. 열의 온도로 얼굴에서 흐르는 땀이 시원함을 준다. 말없이 막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혼자서 땀을 빼는 사람, 5분의 시간에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사람, 연인, 부부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였다가 사라진다.


문은 쉴새없이 열렸다가 닫히고, 사람들은 오고 가고, 막 안의 따뜻함과 막밖의 평온함이 공존한다.

나의 고민도 열렸다가 닫히고, 닫혔다가 열린다. 따뜻함과 평온함을 느끼면서


오늘은 편히 쉬자. 시원하게 음료 한잔을 들이키고, 집을 가기 위해 나선다.

다정함의 크기는 조금 커졌다. 나의 평온함을 찾기 위한 방법이다.



나의 세상은 작지도 않고, 평평하지도 않았다.


며칠 전, 거실에서 미끄러지면서 테이블 모서리에 무릎을 세차게 박았다. 정말 아팠다. 그리고 시퍼렇게 멍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 든 생각은 "에휴!! 짜증나!! 거실이 넓은것도 아니고 이 좁은 바닥에서..." 였고, 다음 생각은 "이만하기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였다.


나의 세상이 그랬다. 작다도 했지만 그 안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작지 않았다. 그리고 평평하지 않은 길이었다. 작은 일, 큰 일, 내가 만든 일들, 주변이 만든 일들, 대차게 날 흔들어놓은 남들의 얘기, 무너진 일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잘 왔다. 이런 일들에 하나하나 반응하지 않고 조금은 현명해지기로 했다. 나의 완벽한 동굴에서 쉬었다 가면서... 그렇게 말이다.


우리 모두의 세상은 작지도 않고, 평평하지도 않기에 숨 쉴 수 있는 완벽한 동굴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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