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찾아온 '엄마와 나'의 감정 싸움
이번 명절에도 엄마와 나는 한바탕 하고야 말았다. 8남매 중 혼자 '솔로'이다. 명절과 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내가 엄마와 함께 보내고, 이동이 필요하면 차로 엄마를 모셔다 드리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내가 다른 형제보다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부딪히게 된다. 여든을 넘긴 연세의 엄마와 40대를 넘긴 나, 아직도 만나면 다투고, 돌아서면 후회한다.
조심해야지 했는데, 엄마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명절엔 가족들이 남동생네에 모인다. 엄마품에서 일찍 떠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언니가 있는데 엄마는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언니도 그게 서운한 것인지 중요한 가족 행사가 있을 때 찾아온다. 그 언니가 이번 명절에 왔다.
명절을 보내고 나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을 하면서 엄마에게 얘기했다. "언니가 오랜만에 왔는데, 손이라도 잡아주지. 그냥 왔냐 라고만 하고. 넷째 사위는 자주 보는데 뭐 그리 반갑다고 일어나서 손을 잡아. 언니가 얼마나 서운했겠어"라고 했다. 운전중이라 엄마의 표정을 보지 못했고, 눈치없이 더 얘기하고야 말았다. "며느리 앞에서 딸들 얘기를 꼭 해야겠어?" 라고. 엄마가 얘기하신다. "이제 그만해"라고. 아뿔싸!! 엄마가 화났다는 얘기이다. 그냥 화가 아니고 몇일이 될지 모르는 '긴 시간이 필요한 화'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후 침묵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셔서 걷는 것도 힘든 몸으로 본인의 캐리어를 끌겠다고 고집하시고, 집에 와서도 말없이 있으셨다. "뭐 드실래? 뭐 줘?"라고 해도 말을 하지 않으셨다. 좋아하는 칼국수를 사다 드려도 안드셨다. 새해 '1월1일'을 그렇게 엄마는 거실에서, 나는 내 방에서 서로 '불편한 마음'으로 보냈다. 매번, 특히 명절에 꼭 이렇게 보내야 하는 것이 정말 짜증나고 화가 났다.
아침이 밝았다. 기분이 풀어지셨을까? "아침 뭐해줄까?"라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으셨다. 아침을 몇 숟가락 드시고 내려놓으셨다. 드디어 내가 먼저 폭발했다. "도대체 왜 화가 난건데"라고 부드럽게 해도 될 말을 거침없이 큰 소리로 해버렸다. 엄마는 "니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생각해 봐!!"라고 하셨다.
"니 어미를 보고 싶지 않아도 오늘 대전에 데려다 주고, 이제는 보지 말자"라고 하셨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 엄마의 마음을 달래기 보다는 원하는대로 해야 한다. 작게는 1달, 길게는 몇 개월이 지나면 메시지가 온다 "뭐하냐? 바쁘냐? 시간되면 내려와라!!" 라고.
말없이 서울에서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짐을 꾸렸다. 올림픽대로를 20분쯤 달렸을까? 오랜 침묵을 깨고 엄마가 얘기를 하셨다. "63빌딩이 저거냐?"라고. 나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눈물을 훔치신다. 아버지가 데리고 가셔서 짜장면을 드셨다던 63빌딩. 그곳을 지나갈때마다 그러신다. 이 사단(?)이 안났으면 63빌딩에 가는 일정이었는데.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러기에 욱하는 성질 좀 내지 말고 계시지'라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얘기가 있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예정된 일정 등을 모두 취소하는 엄마의 패턴!!
'이제는 보지말자'라고, 화가 나시면 습관처럼 하시는 말씀!! 엄마이지만 싫다.
시집 못간 스트레스를 엄마한테 푼다구? "안맞아, 둘이는 안맞아"
울고 나시니, 마음이 진정되셨는지 말씀을 하셨다. 화가 난 이유를. "니는 꼭 나를 화나게 한다. 어미한테 할말 안할말 다하고, 딸이 그렇게 지적을 해야만 하냐, 니가 그럴때마다 '시집 못간 스트레스'를 지 어미한테 푸는구나 생각하면서 억장이 무너진다..."
언니에게 따뜻하게 해주라고 한 말이 엄마는 듣기 싫으셨나 보다. 그게 화를 나게 한 이유였던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엄마와 나'는 의견이 다르다. 나는 "하지 말라고"하고, 엄마는 "하라는데로 해"라고 하신다. 오랫동안 발생된 여러 상황들이 있었는데 이번이 마중물이 되어 엄마의 감정을 '폭발'시켰나 보다.
엄마는 집안 대소사에 모든 음식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하신다. 사위마다 좋아하는 음식을 왜 모두 만들어야 하는지!! 마트에서 한꺼번에 끝낼 장보기를 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힘들게 하는지!! 가까운 병원에 가시면 되는데, 지역을 벗어나 친구분께 들은 그 병원에 꼭 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택시타라 했는데 버스타고 넘어지셔서 왜 병원 신세를 지시는지!! 가족들들이 모두 반대를 해도, 왜 친구분들이 얘기하신데로 의사결정을 하는지!! 언니들은 포기하지만, 나는 계속 얘기한다.
시집을 안간건지, 못한건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얘기에 진심 당황했다. 결혼한 자녀들이 마음과 다르게 현실적으로 하기 어려운 돈과 시간에 대한 부분, 솔로가 더 할수 밖에!! 그러면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 부딪히는 일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늘 이런일이 생길때마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불편'하다. 화가 나지도, 더 이상 어떻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무기력해진다.
가족들은 익숙하다. 엄마와 나의 전쟁 아닌 전쟁을. 1년에 2~3번, 20여년이다. 엄마에게서, 나에게서 각각 전해 듣는 얘기도 언니들은 이제 지겨울거다. 가족 톡방에 공유된 일정과 다르게 변경된 일정을 공유했다. "엄마 대전에 모셔다 드렸어..."라고. 이미 언니들은 파악했다. 또 무슨 사단(?)이 났는지.
항상 나의 힘듦을 이해해주는 언니들이 있다. 우리들은 엄마가 연세가 드셨으니 엄마의 주관, 고집을 내려놓으셔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 여든이 넘으신 지금도 모든것들이 엄마 중심이어야 하는 것에 버거움을 느낀다. 언니가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냐? 마음 잘 추스리고...". 다른 언니의 메시지가 왔다. "여든이 넘으셨는데, 정상적이고 합리적일거라고 생각하면 안되는거지. 맞춰주면 되는데 뭐가 어려워서 맨날 이러냐. 니가 엄마를 가장 많이 닮았어. 그러니까 맨날 부딪히고 안맞는거야"라고 한다.
동네 앞 10분거리의 마트가 엄마 걸음으로 점점 더 길어진다. 횡단보도를 한번에 못건너시고 힘들어 하신다. 엄마의 모든것이 짠하다. 수술한 몸 구석구석 쑤시고 안 아프신데가 없다고 하신다. 굽어진 손가락 마디마디, 하루에 드시는 약도 많다. 차를 타고 여행가는거 좋아하시는데 허리가 안좋아 차도 오래 못타신다. 마음은 청춘이어서 운전도 하고 싶다 하신다. 여든이 넘으셨어도 매일 저녁 1시간 이상 '필사'를 하신다. 허리 수술을 해서 앉아서 1시간 책을 읽고 쓰는 것이 싶지 않은데, 엄마의 그런 모든 모습이 짠하다.
'엄마'생각이 자주 난다. '비가 오는날 또 어디를 가셨는지. 병원에 가신다고 했는데 잘 가셨는지. 입맛이 없으실텐데 뭐라도 드셨는지. 이번 주말에 아무도 안가면 허전해 하실텐데 등' 늘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