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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휴가는 조용했다. 그리고 괜찮았다

공통점 없는 7권의 책과 마주하며...

by 비긴어게인

때로는 '조용한 휴가'가 필요하다


샌드위치 연휴에 앞, 뒤로 연차를 추가하니 '7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여행을 다녀오자니 계획한 것이 없고, 조용히 지내려니 뭔가 아쉬울 것만 같았다. 당일치기, 국내명소를 검색하다가 접었다. "모르겠다. 그냥 푹 쉬지 뭐"라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보낸 이번 휴가는 조용했다. 그리고 괜찮았다.



꽉꽉 채웠어야만 하는 휴가


나에게 휴가는 ''이 아니라, '본전 뽑기'였다. '언제 이곳에 다시 올까?' '온 김에 할 건 다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빡빡하게 일정을 계획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착과 이동을 반복하고 나서야 나름 '잘 보낸 휴가'로 만족해했다.


'휴가'임에도 '조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상 알림'을 맞춰놓았다. 휴가에 가질 수 있는 여유, "몇 시지?' 하며 기지개를 켜고 '배고프네..뭐 먹어볼까"라며 메뉴를 고민하는 여유? 우아함? 그런것은 없었다. 늦게 가면 맛난 것들이 사라질까 봐, 조급해했다. 리조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 식당 메뉴를 놓치지 않으리라는 나의 의지는 계속되었고, 나의 휴가는 그렇게 '일할 때처럼 열심히 달린 휴가'로 마무리되었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행 본전을 못 찾기라도 하는것처럼.



멕시코 칸쿤의 그 사람들처럼


어디론가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2월의 끝자락이다. 드라이브 겸 산책이 좋을 것 같긴 한데 날씨가 추웠다. 햇살의 따뜻함 보다는 얼굴과 목을 스치는 바람이 차가웠다. 그럼 기차여행을 해볼까? '하루 이동 시간이 길다'라고 패스, 쇼핑이나 박물관을 갈까? '내 취향은 아닌 걸로' 이것도 패스!! 종소리가 마음을 스치고 가는 고즈넉한 천년사찰을 뒤져본다. 맙소사 눈과 비 소식이다. 궂은 날엔 운전이 자신 없는데 이것마저 패스!! 그러면 난 뭘 할까? 어딘가를 가고 싶은건지, 가고 싶지 않은건지...


멕시코 칸쿤에서의 기억이 떠올려졌다. '나'아닌 '다른 사람들'의 휴가. 오전이 다가는 11시쯤, 책 한 권을 들고 들어서는 서양 사람들의 모습이다. 커피에 과일하나 간단하게 접시에 담는다. 그리고 천천히 먹고 마시며 주변을 둘러본다. 세상 편한 표정으로!! 그닥 음미할 건 없는 메뉴인데... 식사를 마치고, 벤치로 가서 눕는다. 그리고 책을 펼친다. 나와는 사뭇 다른 휴가의 풍경. 생각했다. 참 멋지네. 나도 언젠가 저렇게 휴가를 보내야지라고.


꼭 어디론가 가야 휴가인가? 그냥 쉬면서 책도 읽고 맛난거 먹으면서 보내지 뭐~

그렇게 나의 휴가는 계획 없이 시작되었다.



공통점 없는 7권의 책과 마주하며


책장에서 나와 책상에서 뒹굴고 있던 '7권의 책'을 읽기로 했다. 선물 받은 책, 추천받은 책, 내가 읽고 싶어 샀던 책이다. 모아보니 공통점이 없다. 다행이다. "어랏!! 편식이 없어졌네"라며 피식 웃고 말았다. 자기계발서를 선호했었는데, 소설도 있고, 인문학도 있고, 트렌드도 있었다.


공간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 일터가 아닌 익숙한 집 공간에 마음이 무장 해제된다. 기상은 했으나 책상 앞에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 TV 리모컨을 누르고 드라마를 보다, 어느새 침대 속으로 쏘옥 들어가버린다. 유튜브 숏츠에 손놀림이 빨라진다. '이러면 안되지'라는 생각으로 이틀째부터는 가방을 주섬주섬 싸서 동네 커피숍으로 갔다. 그렇게 나의 휴가는 '동네 커피숍에서 조용한 독서'로 보내어졌다.


공통점 없는 7권의 책(@yjchoi35)



콧바람이 필요해... 눈에 담은 풍경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려한다. 마지막 눈일까? 눈과 비가 섞여 흩날리는 날, 바람을 쐬러 갔다. 운이 좋게도 '바다 위 해가 지는 저녁 풍경'을 눈에 담고, '눈 오는 날의 풍경'도 눈에 담았다.




화려하지 않았어도, 어쨌든 이번 휴가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기대를 안해서인가?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음식과, 특별한 곳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살고 있는 내 집, 동네 커피숍에서 북적북적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없어진 게 있다면 '일'만 쏙 빠졌을 뿐이었다. 휴가가 끝난 시점, 난 하고 싶은 얘기와 에너지가 더 많아졌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다양한 생각들. 왠지 득템 한듯한 에너지. 화려하지 않았어도, 어쨌든 이번 휴가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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