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어.
나는 첫째 아이가 10살이 된 지금도, 그때 했던 임신테스트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4살 터울인 둘째 아이 것도 마찬가지다.
이사 때마다 다른 건 몰라도 임신테스트기만큼은 소중히 챙겼었다.
왜 버리지 못할까 생각해 봤는데 그날의 떨렸던 순간을, 시간의 흐름 속에 서서히 지워져 가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면 그날인 거 같다. 선명한 두 줄의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한 그날. 살면서 괴로웠던 기억들을 더 끌어안고 사는 나에게 '이건 신이 너에게 주신 선물이야.'라는 증표처럼 간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고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 내 인생은 아이 위주로, 아이 생체 리듬에 맞춰 그렇게 흘러갔다.
하지만 첫 출산의 경이로움도 잠시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 오는 첫날밤 아이는 밤새도록 울었다. 정말 밤. 새. 도. 록. 말이다. 밤새 아이를 안고 서서 달래는 사이 내 허리는 그야말로 아작(?)이 나버렸다.
결국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고 산후조리 중이니 병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쌩으로 그 고통을 버텼는데 사실 진짜 문제는 그것 말고 다른데 있었다. 바로 잠을 못 자는 고통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잠을 못 자게 하는 고문이 있다고 들은 거 같다. 그래도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같은 다른 잔인한 고통보다는 낫지 않아? 이랬는데..
이런 내 생각을 비웃듯, 3주 동안 2시간 단위로 잠을 쪼개는 생활이 지속되자 나는 아이를 안고 17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내가 미친 건가? 이 생활을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견디며 넘어가는 걸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과 수면욕. 이 두 개만 잘 해결돼도 사람은 그럭저럭 살만 하다.
정우열 정신과 의사가 말했었다.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를 볼 때 딱 2가지는 꼭 물어본다고.
"잘 드세요? 잘 주무세요?"
이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이 안 되는 시기가 여자에게 있어 처음으로 엄마가 된 순간이다.
신생아 때 힘들다고 말로는 무수히 들었지만 정말 이 정도인 줄은 몰랐지.(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고 괜히 말하는 것이 아니었음)
아기들은 2시간마다 한 번씩 일어나서 젖이던 분유던 먹여야 하는구나.
모유를 못 빨던 첫째를 위해 나는 100일까지는 모유를 먹이고 싶어 악착같이 유축을 해서 먹였었다.
시간마다 젖을 짜야했고, 그걸 팩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고 젖병에 넣어서 먹여야 했다. 빨기라도 잘했으면 아이도 나도 덜 힘들 텐데.. 하지만 번거로움은 둘째치고 아이가 모유를 못 먹는다는 안타까움에 유축하는데 더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아기가 100일이 되고 200일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어느새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잠을 못 자서 죽고 싶었던 그 순간들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는 기쁨도 잠시, 영유아검진 때마다 소아과 선생님은 언어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적어주셨다.
아기 때 옹알이는 꽤나 잘했는데 이상했다. 말이 터져야 하는 때가 왔는데 엄마 아빠 말고는 10개 미만으로 단어들을 말했다. 마음속으로는 말이야 늦게 터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검진 때마다 추적검사 요망. 언어지연이라는 말이 솔직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유명한 베스트셀러 육아서적들을 구입하면서 이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책에서 나온 공통적으로 강조한 36개월.
대개 아기는 36개월까지 언어가 터지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언어치료를 권한다.
남자아이라서 늦겠지 라는 변명도 그때까지만 통하는 것이다.
두려운 36개월이 드디어 왔고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언어치료 복지카드를 뒤늦게 신청하고 언어치료실에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터질 거야 터질 거야 마음속 기도는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