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꼬리를 잘라야 할 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누구나 뜻하지 않는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는 거다.
나는 그런 고난이 왔을 때마다 어떻게 극복했을까 잠시 지난 인생을 돌이켜봤다.
이를 악물고 버텼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그렇게 내 안의 깡을 꺼내서 이겨냈었다.
생각해 보면 매 순간마다 진심으로 살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진심으로, 진정으로 나는 우리 집 가훈처럼 최선을 다해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내 앞의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공책을 편다.
적어본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 거지?
아직 나만 바라보는 7살, 11살 두 아들이 있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이들이 있다.
나에게 이렇게 사랑고백을 매일 해주던 존재들이 있었던가?
그들의 작은 몸과 언어가 나를 다시 일으킨다.
모든 엄마들에게 아이의 존재가 그렇겠지만
인생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원동력.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해맑은 웃음이 그 어떤 것들보다 강력한 해독제가 되어줌을 매 순간 느낀다.
하지만 최근에 그 해독제마저 나에게 먹히지 않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내가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서 그런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다.
어제 좋아하는 글벗 작가의 번아웃에 대한 글을 봤는데 지금 느끼는 감정이 그것일까 싶기도
했다. (근데 정말 그렇게 다 쏟아부은 게 맞니?)
매일 새벽기상, 책 읽고 글쓰기, 첫째 아이의 수술과 연이은 병원방문, 그거 말고도 두 아이의 번갈아가는 언어치료실 스케줄.
내가 가진 모든 시간들을 글과 독서에 쏟아부을 수 없다면 나에게 허락된 시간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 집중력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그런데 아마 그 집중력이 발휘가 안되니 힘들었던 거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손이 많이 간다.
그건 엄마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의 1순위이다.
아이들을 씻기고 칫솔질을 해주고 밥을 먹이고 학교와 어린이집을 보내는 일.
그 외 아이들에게 할애되는 시간들은 당연히 엄마로서 나의 책임과 의무로 채워져야 한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들을 잘 써야 한다.
글을 읽을 때도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는지 좀 더 깊게 사유해야 한다.
그 깨달음을 넘어 내 삶의 체화가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집중, 또 집중.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이다.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해서, 너의 정신이 이제 더 이상 노예로 살아가게 하지도 말고, 온갖 이기적인 충동들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꼭두각시가 되게 하지도 말며, 현재의 운명에 불만을 품거나 장래에 닥칠 운명을 두려워하게 하지도 말라.(주 1)
주 >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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