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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게 먹이를 주는 짓은 이제 그만

불안의 숙주를 끊어내야 내가 산다.

by 환오

매주 일요일 아침 7시에 지담 작가의 인문학 강의가 있다.

거기서 여러 작가님들의 자유로운 질문으로 한 시간 동안

그녀는 인문학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답변을 해주신다.

이번 주 질문 담당은 과감히 내가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 수술을 앞두고 불안에 휩싸인 내 감정을 모두에게 공표하는 순간이었다.


내 마음의 불안이라는 감정을 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 불안이 저를 이끌지 못하게 하고 싶어요!!



물리치고 싶다는 나의 간절한 바람을 느낌표 두 개로 채팅창에 표시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지담 작가가 해준 말은 내 머리를 세게 후려치다 못해 눈이 번쩍 뜨이게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의 무의식이 계속해서 불안이라는 감정에 먹이를 주고 있었단다.

내가 불안이라는 감정을 항상 끌어안고 그 상태를 유지해야만 살 수 있단다.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의 굴레에 갇힌 나.


소름이 끼친다.

나를 불안하게 만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구나.

불안을 없애는 방법을 찾는 것조차

이미 새로운 불안이라는 감정을 내 안에 계속해서 씨앗을 뿌리고 있었구나.

이 불안이 해소되면 또 다른 불안의 씨앗이 내 안에 살도록

그렇게 내 무의식 속에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불안의 감정에 내가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불안을 느낀다-인식한다-그래, 와라 이놈들아, 내가 휘둘리나 봐라!

일단 오면 오케이. 인정. 잘 놀다 가렴.


하지만 나는 미래에 시선을 맞추고 아이를 바라본다.

이 수술을 마치고 9년 뒤에 스무 살이 되어 있을 내 아이를 상상한다.


11살 풋내 나던 소년은 어느새 건강하게 자라 딱 벌어진 어깨깡패가 되어 나를 안아준다.

키는 185센티미터. 와우, 언빌리버블.

170 언저리인 아빠를 넘어서고도 남았다.

인중에 남겨진 흉터 따위는 아이에게 그다지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 것보다 아이는 주어진 인생에 감사하며 행복감을 느낀다.


from의 시선으로 아이의 멋지고 밝은 미래를 상상하니 지금의 불안과 고통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이 수술은 단지 아이의 성장에 꼭 필요한 것이니 사실로 인정하면 된다.

그 '사실'에 내 감정을 더하지도 섞지도 말자.

그리고 아이가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엄마의 자리를 든든히 지켜주면 된다.


내 역할은 그뿐이다.

보육은 내가 하고 키우는 건 세상이 한다.

내가 키우면 딱 나만큼만 큰다.

(아, 상상하니 급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게 된다.)


지금 이 글은 아산병원 신관 15층 병실에서 작성하고 있다.

아이는 아직 자는 중이고 아침에 눈이 뜨면 이제 수술실로 들어갈 일만 남았다.

이제 고지가 얼마 안 남았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아니 현재형으로 잘하고 있다!)


기특아, 네가 수술하는 동안 엄마는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이 세상 모든 신들께 기도하고 있을게.

우리 아무 탈 없이 회복실에서 만나자.




이제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쫓아내겠다는 생각도 그만두려 합니다.

우주는 당신의 무의식과 교신한다(주 1)는 말을 믿으려고요.

지금은 그저 아이가 건강하게 수술을 마치고 얼굴을 보면 좋겠습니다.

병원에서 작성하느라 조금 엉성하고 부족한 글을 내놓는 게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 1>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제인 로버츠/ 도솔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 7시 : [주부지만 요리를 못하는 요똥입니다]

화요일 오전 7시 : [책! 나랑 친구 해줄래?]

수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목요일 오전 7시 : [공대생이지만 경리만 10년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 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시 :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일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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