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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관리 해보셨나요?

저의 10년 경리일에 건물 관리도 있었네요.

by 환오

10년 경리직 고인 물의 에피소드 하나 풀자면,

회사일 말고도 나는 사장님의 개인사업 뒤치다꺼리도 대부분 도맡아 했었다.

그 수많은 잡다한 일 중에 하나는(어디라고는 못 밝히지만) 대학교 근처 원룸건물을 하나 관리했었다.(심지어 이건 사장님 와이프 명의) 그 건물에 방이 30개 가까이 된 걸로 기억나는데 기본 주요 업무는 들어오는 입주자들 입퇴실 할 때 정산을 했었다. 보증금에서 이사 당일 가스요금, 전기요금 두 개를 공제하고 퇴실하는 사람 계좌에 송금하는 일.

거기다가 플러스 알파로 그 건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나에게 연락이 가게끔 내 핸드폰 번호는 입주자들에게 공유가 되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 때 새벽 4시, 문자가 울렸다.

내용인즉슨 여기 인터넷이 안 돼요! 블라블라블라...

한 자취생이 개념 없이 보낸 문자였다.

그것도 그 새벽에 엄청 짜증 섞인 말투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편이

"아.. 이 시간에? 여보 회사 관둬.."

그때 남편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천추의 한이랴.

그 뒤에도 뭐 노예의 삶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기가 막힌다. 오랜만에 옛 기억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전에 임금협상 할 때 사장이 부른 금액보다 내가 더 불러서 이리된 것인가.

그래, 주는 만큼 나한테서 뜯어내야 하니 나는 이미 약자가 되어있었다.


당시 내 핸드폰은 더 이상 내 ‘개인폰’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원룸 자취생들 문자로 도배됐었으니까. 하하하.

인터넷 연결부터 시작해서 건물 관리하는 경비 할아버지 냄새가 심해서 1층에 들어오면 고역이다 까지...

별별 문자가 다 왔었다.


회사 전용으로 핸드폰 하나만 개통시켜 달라고 말할까 말까 수업이 많은 날을 고민했지만 사장의 씀씀이를 알고 있기에 입을 꾹 다물고 참았다.

돈을 내고 입실한 어린 갑들에게 나는 항상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 입으로는 사과를 빌고 있었다.


그 시간들을 나는 어찌 버텼을꼬.

그 건물 팔고 나서 어느 날 사장님은 나에게 고생했다며 소정의 수고비를 주셨더랬지.

그것도 일부러 직원들 다 들리게 회의실 문을 반 열고 주셨더랬다.

꽤나 돈에 예민한 사장님의 평소 행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 직원들은 내가 무슨 특혜나 받는 걸로 생각했겠지. 자기네들은 보너스도 안 주는데..

받을 때 꽤나 민망했었다. 굳이 다른 사람들 들리게 이 돈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그 돈을 받기 위해 얼마나 그지 같은 일들을 참았는데..

돈이 돈으로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사모님 명의의 건물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아니 아마도 그전부터 야금야금 사모님의 일까지 나에게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장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테헤란로 일대가 그녀의 친정 땅이라고 들었다.

돈 많은 그녀에게 소소한 사업 중 하나로 프랜차이즈 카페가 강남에 하나 있었는데(물론 그녀는 명의만 가지고 있지 나머지는 남편인 사장이 다 알아서 한다.)

그 관리도 애매하게 나에게 넘어왔다.

예를 들면 카페 직원들의 월급 문제라던가 매니저가 결혼한다고 해서 축하화환을 보낸다던가.

나는 이리저리 땜빵으로 참 잘 쓰였었다.


그때는 선이 없는 그런 일들이 불편했다.

왜 내가 하는 일은 정확한 기준이 없는 것인가.

처음에 입사할 때만 해도 회사 하나만 보고 들어왔는데

그 당시 나는 멀티도 이런 멀티는 없겠다 싶은 나날이었다.


한 번은 공휴일에 사모님의 호출이 있어서 나와 다른 직원 한 명까지 더해져서 회사에 출근한 적이 있었다.

30분도 채 되지 않아 일은 마무리 됐는데 그녀가 봉투를 꺼내더니 나와 직원에게 나눠준다.

그 안에는 십만 원이 들어있었다.

공휴일 출근이라 속으로 쌍욕이 나올 뻔했는데

그 봉투로 욕이 조용히 백스텝으로 들어갔다.(그렇다. 나는 돈의 노예가 맞다..)

그래도 사장보다는 씀씀이가 크시구나를 느끼게 해 준 일화였다.

그 뒤로도 나는 그녀의 자잘한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겸했다.


내 일인 듯 아닌 듯. 경계가 없는 일.

작은 회사를 다니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

이것이 진정 내가 받는 급여에 해당하는 업무량인지 갈팡질팡 고민을 하던 사이

십 년이 흘렀다.


그래도,

고생했다. 환오야..

십 년 동안 작은 회사 경리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는 걸 뼈절이게 느낀 세월이었다.

나에게 숨겨진 인내심과 끈기의 결정체는 그때 더 다져졌으니

그 세월을 버티고 견뎌낸 나 자신에게 무한 박수를 보낸다.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 7시 : [주부지만 요리를 못하는 요똥입니다]

화요일 오전 7시 : [책! 나랑 친구 해줄래?]

목요일 오전 7시 : [공대생이지만 경리만 10년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 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시 :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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