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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관리 해보셨나요? -2편-

지난주에 이어 짠내 에피소드 이어갑니다~

by 환오

우리나라에서 언젠가부터 진리 아닌 진리처럼 되어버린 말.

조물주 위에 건물주.

그만큼 건물주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크다는 걸로 해석하면 되는 건가.

언젠가 초딩들에게 커서 뭐 되고 싶니 물어보면 건물주라는 답변이 나온다는 기사를 보고 나도 모르게 씁쓸한 썩소가 지어졌다.

이 나라는 돈이 제일 중요한 가치구나.

대한민국 왜 이렇게 됐지라고 한탄하기에 앞서 나부터가 건물주가 된다고 상상하니 입이 헤벌레 절로 벌어진다.


건물주는 근처도 못 가봤지만 나는 ‘건물관리인’은 해봤다. 푸하하.

이것도 내가 10년 동안 한 경리일에 포함되는 업무였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사무실은 총 3번의 이사를 겪었다.

마지막 이사는 이사의 종착역이었다.

사장님의 돈 많은 와이프가 통 크게 건물을 사버렸다.

그녀가 건물주가 되었고 내가 다니던 회사가 임차인으로 들어간 것.

와이프는 건물주, 남편은 세입자가 된 것이다.


우리 회사 말고도 4개 정도 다른 업체들이 들어와 있어서 사무실을 임대받고 있었다.

나는 매달 그 사무실 앞으로 임대료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일을 했고(이건 아주 나이스하고 깔끔한 일) 간혹 건물에서 발생되는 자잘한 일들이 내게로 넘어오게 되었다.




한 겨울이었나. 강추위에 수도가 꽁꽁 얼어 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전날 탕비실에 있는 개수대 수도꼭지를 좀 틀고 갔어야 했는데 깜빡했나 보다.

마지막 퇴근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기에 그 앞에 메모지라도 붙여야 했는데..

어쨌든 다음 날 수도는 얼어서 물은 나오지 않았고 그 일로 나는 사장님한테 속된 말로 된통 깨졌다.


그래, 사무실 관리는 나다. 나였지. 잊으면 안 된다.


나를 꽤나 힘들게 한 임차인의 기억을 꺼내보자면..

들어온 업체 중에 학원이 있었는데, 이 학원과는 끝날 때까지 악연이었다.

심지어 아이들이 꽤 많이 오는 그 동네에서 잘 나가는 학원이었다.

그런데.... 원장이라는 사람은 그야말로 성질이 괴팍하기 그지없었다.(직업과 인성은 별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말에 시댁 모임이 있어 참석한 어느 토요일,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느낌이 싸하지만 일단 받았다.

다짜고짜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이 사람 뭐지? 싶었는데 그 학원 원장이었다.

지금 소방 안전 경보음이 울려서 학원에서 난리가 났단다.

'우리 애들' 놀래게 이게 무슨 일이냐며 눈앞에 있으면 내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 사람은 분노조절장애가 있나 싶을 정도로 그날의 전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정말 죄송합니다. 아임쏘리. 스미마셍 밖에 없었다.

뭐가 죄송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돈을 주는 갑에게는 넙죽 엎드려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상책이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자잘한 컴플레인과 함께 관리소장님과도 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학원원장 사이를 조율하는 것도 내 일이 되었다.


관리소장님은 학원 원장이 공부머리는 있어도 밥상 예절은 못 배운 놈이라고 했다.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다고.(당시 인정의 끄덕끄덕)


하지만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이렇게 외부에서 깨지고 건물과 관련된 컴플레인이 생길 때

그 일이 생겨난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닌데 사장님은 은근 내게 불만을 표시했다.

그리고 내가 아닌 세입자들 편에서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 나를 대했다.

아마 이 사건이, 내가 10년 동안 품었던 사표를 던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오죽하면 다른 후배가 내 상황을 보고 왜 사장님은 팀장님한테 화를 내는 거냐며 대신 분노해 주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말 다했다.


나 혼자서 착각했다.

사장과 나는 한 팀이라고.

그런데 겪어보니 아니었다.

나는 그냥 모든 일들을 사장의 레이다망에 걸리지 않게 해결해야 하는 만능로봇이었다.


말이 통했던 관리소장님에게 나의 퇴사를 알리자 아쉬움을 표하면서 한말이 귀에 때렸다.

"사장님은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해요."


입사하고 사장님에게 제일 배우고 싶었던 점이 강강약약이었는데.

사무실에 오는 택배기사님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는데..

10년 동안 사람이 변한 건지, 아님 진짜 모습을 내가 몰랐던 건지.

어느 순간 그는 약강강약, 내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래도 10년 동안 안 좋은 기억만 있었을까.

뱃속의 기특이가 구순구개열임을 알고 무너지는 나를 달랬었고,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말라며 단호히 말하는 오너의 모습에 위로를 받았었다.

분명 같이 한 10년 동안 차가운 겨울만 보내지는 않았다.


이제 나에게 회사생활은 그려려니, 그런 일도 있었더랬지도 회상하는 과거가 되어 버렸다.

한때는 내 젊음을 불살라 버렸던 곳.

그래서 더 이상 한 톨의 미련도 없는 그곳.

지금도 이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벌이는 그곳.

우리의 밥벌이는 여전히 치열하고 슬프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지도 모른다.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 7시 : [주부지만 요리를 못하는 요똥입니다]

화요일 오전 7시 : [책! 나랑 친구 해줄래?]

목요일 오전 7시 : [공대생이지만 경리만 10년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 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시 :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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