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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밥계산 어떻게 하나요?

저는 한때 카드깡을 했었죠.

by 환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점심 식비는 각자 지출이었다.

나중에 인당 5천 원씩 지원이 됐던 거 같기도 한데 기억이 흐물거려 뿌옇기만 하다.

경리직원의 또 다른 업무는 돈과 관련된 것은 다 내게로 오라!! 였다.

그러니 점심을 먹고 나서도 계산은 내 카드로 일단 긁고 직원들이 현금으로 나에게 줬다.


이때 사람들의 성격이 드러난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깔끔하게 점심값부터 내는 S주임.

나머지 사람들도 대부분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나에게 한두 명씩 와서 점심값을 건네준다.


하지만.... 마의 구간이 있다.

K부장은 점심시간이 끝나도, 퇴근 시간이 다가와도 돈을 안 줄 때가 많았다.

그러면 내가 그의 자리로 굳이 옮겨 가서 얘기를 꺼내야 한다.


“부장님, 아까 점심값 안 주셨는데요?”

“어이쿠, 잠시만. 나 잔돈이 없는데 내일 한꺼번에 몰아서 줄게.”


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이런 거다.

당일 계산이 내일로 미뤄지는 것.

물론 받을 돈이지만 이렇게 묵은지처럼 하루라도 묵히는 게 참 찜찜하다.


어느 순간 내 카드는 법인카드처럼 직원들의 밥값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점심값 계산이 S주임에게 옮겨지고 나서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성격상 S주임은 바로바로 안 받아도 개의치 않아 하는 듯했다. 다행이다.


이 회사에서 유일한 홍일점이던 내게 단비 같은 소식이 생겼다.

나 말고 여자직원이 한 명 더 들어온 것.

그 친구는 해외업무 파트를 맡아서 나와는 일이 겹치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내성적인 그녀와도 티키타카가 잘 맞아 회사 다닐 맛이 난다 싶었다.

그녀도 밥 먹을 때 K부장이 공동반찬을 젓가락을 같이 휘젓고 먹는 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우리 도시락 한 번 싸와볼래요?”

“오!!! 대리님 좋아요!!!!!”


나의 제안으로 그녀와 나는 단 둘이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왜 이 좋은 생각을 진작 못했지??

돈도 절약하고, 점심값 계산에서 해방되고, 일석이조다!!


걸리는 게 있다면 한 시간 나머지 직원들과 스몰토킹을 못 한다는 거지만.

뭐 그거 때문에 일에 지장을 받지는 않으니까 패~수!


모든 걸 다 얻을 수는 없는 법.


친한 동료와 오붓하게 점심을 먹는 일은 나에게 꽤나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 친구가 2년을 못 채우고 나갈 때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서운하고 힘들었다.

그래도 더 넓은 곳으로 나가는 그녀를 무한응원했다.


회사는 한 명이라도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그럭저럭 버틸만한다.

그 친구와 함께 한 2년 남짓한 시간이 나에게는 버팀목이 되어준 날들이었다.


회사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 움직이는 곳이다.

사람의 정이 없다면 뛰쳐나가도 후회가 없는 곳.

나와 함께 버티고 있는 동료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아닐까.






[환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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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전 7시 : [공대생이지만 경리만 10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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