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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실수가 있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by 환오

내가 다닌 회사는 매년 연말이면 거래처들 앞으로 연하장을 돌렸다.

기부의 목적으로 사장님은 연하장도 꼭 유니세O에서 구매를 했었다.

연하장 주소지를 출력하는 것도 내가.

우체국에 가서 보내는 것도 내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이쯤 되니 4살 아이에게 찾아온다는 ‘내가병’이 생각난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난다.

첫째를 임신하고 4개월 남짓 됐을 때였나.

회사에 출근하면서 우편함을 항상 확인하고 올라가는데 그날따라 나보다 늦게 우체국 아저씨가 오셨나 보다.

그리고 그 우편함에 있던 반송 우편물을 사장님이 들고 사장실로 올라간다.


내 자리로 전화가 울린다.


“최대리! 내방으로 들어와!”


거칠게 수화기를 끊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살벌하다.


뭐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이렇게 화난 목소리는 처음인데..

들어가니 그의 얼굴은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금 나 엿 먹으라고 이렇게 보낸 거야!!!!!”


사장님이 집어던진 연하장 봉투에는 받는 사람과 주소가 적혀있었다.


반송된 건데 뭐가 문제지?


“이렇게 나머지도 이름만 적어서 보냈어?!!!!”


아....

그제야 알았다.

이름 뒤에 ‘귀하’를 뺐다....

누구누구님 ‘귀하’......

귀하가 빠진 연하장이었다.


내가 왜 그랬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뼈아픈 내 실수였다. 무슨 말로도 변명이 되질 않는다.

죄송합니다만 수없이 조아리고 방문을 닫고 나와서 내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차장님이 내 곁으로 오더니 토닥토닥 나를 다독여준다.

동료의 따듯한 위로에도 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한 편이지만 나 자신한테는 엄격한 편이다.

그래서 한 번 저지른 실수가 꽤 오랫동안 내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서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날의 사건은 한동안 나를 꽤나 아프게 했다.

매년 같은 일의 반복이었는데 왜 그랬을까가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다.


경리라는 업무가 그랬다.

유동성이 적은 일들의 반복된 업무.

정해진 일들만 잘 처리하면 큰 사고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일 년에 한 번 처리하는 일.

이런 일들이 가끔은 문제를 일으킨다.

나는 그날의 실수로 더 예민하게 레이다망을 세우고 회사 업무를 진행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래, 그럴 수 있어.(양희은 선생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왜 나는 유독 나에게는 상냥하지 않은 걸까.

실수할 수도 있잖아.

다음부터는 안 그러면 되지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데?

그런데 그 ‘다음’이라는 기회가 회사에서는 없다는 게 문제지.

백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그냥 디엔드다.(음 뭐지? 시월드랑 비슷한 느낌적인 느낌)


회사는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내가 사장 딸이라면 모를까.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야 한다.

어제보다 더더더 치열하게. 정신 똑디 차리고.

매일 비장한 각오로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회사에 출근하는 모든 직장인들을 더더더 존경할 수밖에 없다.




실수할 수도 있지만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는 맙시다.
그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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