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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 10년 동안 나를 버티게 해 준 여인네들

첫 번째 그녀.

by 환오

잡채 과장이 그만두고 후임으로 들어온 그녀는 나보다 2살이 어렸다.

https://brunch.co.kr/@yjchoichoi/175

하지만 잡채 직급에 들어왔기 때문에 들어오자마자 ‘대리’라는 직함을 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전혀 위화감이나 여자들 사이에서 흔한 ‘질투’따위의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나는 실력 앞에 인정을 꽤 잘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한 경력직이었다.

면접을 보러 온 그녀는 회색 정장에 다소 어색한 화장을 했지만 미소만큼은 예뻤던 걸로 기억난다.

우리는 각자 파트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일적으로 겹치는 경우는 없었다.

가끔 겹친다 하더라도 그녀의 스마트한 일처리 때문에 내가 도움을 받은 적이 더 많았다.

그런 그녀는 2년을 채우고 회사를 관두게 되었다.

업무적인 힘듦으로 관둔 거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었기에 속은 상하지만 붙잡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회사를 관두는 사람을 붙잡는다고 붙잡히는가.

2년 동안 중간에 도시락도 싸와서 둘이 회의실에서 점심도 오붓하게 먹고 산책도 하고 추억을 많이 쌓았었다.

그런 우리의 인연은 그녀가 다른 회사로 이직한 뒤로 계속되었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이어서 그녀의 웨딩촬영이 야외에 있었는데

나는 쫓아가서 당시 남편과 사진을 찍어줬다.

그녀의 결혼식은 하필 시댁 가족의 결혼식이 겹쳤던 터라 일찍 가서 사진만 찍고 두 탕을 뛰어야 했다.

아쉽지만, 그래도 사진은 남겼으니 되었다고 위로했다.


회사에서의 인연은 '결혼식'이 끝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병원이 마침 회사 근처였다.

정말 감사하게도 거리가 가까워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녀의 얼굴을 보러 갔었다.

아이는 엄마를 닮아 미소가 예쁜 아기였다.

이렇게 적어보니 그녀와 나는 인생의 빅이벤트 때마다 같이 있었네..


지금은 각자 육아에 빠져 연락을 하고 있지는 않는다.

그래도 언제든 톡이나 전화를 하면 반갑게 안부를 물어볼 수 있는 사이.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


사실 회사를 다닐 때 그녀의 가족에게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그런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고 위로해 주는 일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내 마음은 같이 무너져내려 갔었다.

마음을 많이 줬던 동생 같던 동료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는 게 더 괴로웠다.

사람이 너무 큰 일을 당하면 표정도 말도 없어진다.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그렇게 회사를 다녔다.


그런 그녀는 회사업무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고 했을 때도 사실 올 것이 왔구나 했다.

비록 회사를 나갔지만 우리의 인연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돼있는 그녀를 멀리서나마 응원한다.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회사 다녔을 때는 주 5일을 봤는데..

글을 쓰다 보니 그녀가 보고 싶다.


10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바로 사람이다.

기대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중에 한 명이 그녀였고, 그녀 덕분에 한동안은 회사 다니는 것이 즐겁기까지 했다.


물론 회사에서 선은 잘 지켜야 한다.

친하게 지내다가 업무적으로 틀어지면 원수가 되는 경우도 흔하므로.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관계는 말랑말랑하게 지내야 한다.

우리는 운이 좋아 두 개를 다 얻은 것 같다.


회사생활이 지랄 맞을 때는 이렇게 마음에 맞는 짝꿍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렇게 또 버텨지더이다.

그녀에게 조만간 안부톡이라도 보내봐야겠다.

잘 지내니? 오겡끼데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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