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라서 선택한 엄마의 단순한(?) 선택
우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피아노학원을 보내주셨다.
아마 여자아이라서? 보내신 건지, 내가 보내 달라고 졸라서 가게 된 건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무튼 체르니 30번까지 마치고서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학원은 그만두게 되었다.
그 당시 대부분 아이들의 선택이 그러했으리라.
전공으로 선택할 거 아닌 이상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피아노 학원을 가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내 아이는 또래보다 마르고 운동신경은 전혀 없는 몸이다.(미안하다 아들아.. 엄마도 운동신경 꽝..)
사실 성별을 떠나서 운동은 꼭 시키고 싶었다. 예전에 교육학과 전공한 친구가 그랬었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고등학생까지 무조건 운동은 꼭 시킬 거라고. 운동이 뇌발달과 상관관계가 굉장히 깊다는 거를 에둘러서 말해줬었다. 아빠가 주말마다 데리고 나가서 야구를 한다던지 공차기를 한다던지 그랬으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 안 되는 것을 기대하면서 내 마음을 괴롭히기보다는 돈은 들지만 학원을 선택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도 이로웠다.
태권도 학원은 우리 집 건너편 상가에 있었다. 그러니까 횡단보도를 한번 건너야 하는 상황.
나는 학원에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이가 혼자서 학원을 다니지 않는 이상, 학원 보내는 일은 엄마에게 중노동이라는 것을.
수업 시작하기 전 아이와 같이 학원 문 앞에서 인사를 하고 나는 집에 돌아온다. 수업시간은 한 시간 남짓.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나는 다시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인간 셔틀이 따로 없다. 아.. 학원을 보내면 잠깐이라도 내 시간이 주어지겠지 라는 달콤한 상상에 빠진 나는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래서 엄마들이 셔틀 태우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래 그랬구나. 나만 몰랐어..
하루에도 몇 번씩 현관문을 열고 닫고, 이것은 운동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단순노동에 불과한 움직임,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이래서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나를 갉아넣는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아이는 태권도학원에서 과연 즐거웠을까?
분명 아이는 좋아했다. 한 달에 한 번은 이벤트로 토요일에 방방이도 하고 떡볶이 파티도 하고.
관장님은 아이들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쓰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1년 6개월 정도하고 아이는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처음에는 달래 보았지만 한 달 이상 아이가 갈 때마다 가기 싫다고 말하는 걸 보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 1년 6개월 동안 아이는 뭘 배웠을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학원에 가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으리라. 언어가 느리다 보니 아이들 놀이에도 쉽게 끼어들지 못하는 아이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만 봐도 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태권도 실력은? 음, 전혀 늘지 못했다. 관장님 말씀으로는 태권도는 3년은 다녀야지 폼이 나온다고 하니 운동신경이 안 그래도 없는 우리 애가 제대로 발차기하는 모습은 기대할 수 없었다.
태권도 학원을 그만두고 몇 달 있다가 1학년 겨울방학 때 피아노학원을 다니고 싶다 하여 보내주었다.
태권도랑은 다르게 피아노는 결과물이 나왔다. 아이는 1년 반 넘게 현재까지 주 5일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어느 날부터 집에 있는 피아노(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31년 전에 아빠가 사주신 영창피아노, 친한 친구가 무덤까지 가져갈 거냐며 놀리는 피아노다) 뚜껑을 열며 악보를 보지 않고, 외우면서 치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기도 했다. 뚱땅뚱땅 피아노 위에 건반들을 치는 모습이 제법 즐거워 보인다.
사실 피아노 학원을 보낼 때 내 마음은 아이가 나중에 커서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악기라면 어떨까. 너의 생각을 바로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게 조금 어려우니 대신 피아노로 네 마음을 표현하면 어느 정도 마음의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엄마의 바람이다.
그래서 결론은!
아이 학원 선택은 빠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이가 원하는걸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조금 기다려주세요~